‘3A 성장' 구조 한계 드러낸 미국경제
AI 투자 부문에 내재한 불안정성 … 2026년 미국경제의 최대 리스크 요인으로 부상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2025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p 인하했다. 이로써 연준의 기준금리 목표 범위는 지난해 말 4.25~4.50%에서 3.50~3.75%로 낮아졌다.
연준은 여전히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계하며 ‘데이터에 근거한 신중한 접근(data dependent)’을 강조하고 있지만 소비와 고용 흐름을 종합적으로 평가해보면 통화정책의 무게중심은 이미 완화 쪽으로 이동한 모습이다. 12월 FOMC 점도표에서 연준은 2026년에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할 것이라 했지만 미국 경제 상황에 따라서는 그 이상 내릴 확률도 높다.
AI 투자에서 시작된 ‘3A 성장’ 구조
2025년 미국 경제는 수많은 경기침체 신호에도 불구하고 잠재성장률로 추정되는 2% 안팎의 성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단기 금리차의 역전, 제조업 경기의 구조적 부진, 고용증가 폭 둔화와 실업률의 점진적 상승 등은 과거 경기 순환상 경기침체 국면의 전조로 해석돼 왔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지표는 일정 시차를 두고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미국 경제가 비교적 안정된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통적 경기 회복 요인보다는 인공지능(AI) 투자–자산가격(Asset Prices) 상승-부유층(Affluent) 소비로 이어지는 이른바 ‘3A 성장’ 구조 덕분이었다.
2025년 미국 경제성장의 출발점은 단연 AI 투자였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를 중심으로 한 AI생태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경쟁과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설 붐으로 이어지며 전례 없는 규모의 설비투자를 촉발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설비투자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10.5%까지 하락했으나, 2025년 상반기에는 15.3%까지 급등했다. 이는 2000년 IT 버블 정점 당시의 11.5%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미국 경제가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투자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이번 투자 사이클은 생산성 향상이나 임금상승을 동반한 전통적인 설비투자 확대와는 다소 다른 성격을 지닌다. AI 투자의 상당 부분은 서비스 상용화 이전 단계에서 인프라 구축과 설비 선점에 집중돼 있으며 단기간에 수익을 창출하기보다는 미래 성장 기대에 기반한 선행 투자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기술혁신의 관점에서는 긍정적인 요소이지만 투자성과가 예상보다 늦어질 경우 기업 재무구조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AI 투자 확대는 곧바로 관련 기업의 이익 증가 기대와 맞물리며 주식시장 상승으로 이어졌다. 2025년 10월 S&P500 지수는 6920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가계는 금융자산의 절반 이상을 주식 형태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주가상승은 즉각적인 자산 효과를 통해 가계의 부를 크게 늘렸다. 2025년 6월 기준 미국 가계의 금융자산은 134조5000억달러, 부동산 자산은 53조2000억달러로 모두 사상 최고치였다.
자산가격 상승은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를 통해 소비를 강하게 자극했다. 특히 소득상위 10% 계층의 소비 증가가 두드러졌다. 미국에서는 이들 고소득층이 전체 소비의 약 40%를 차지하는데 주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은 이들의 소비 여력을 크게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다. 소비가 GDP의 약 69%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 구조에서 자산시장 호황은 경기의 핵심 방어막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 확대는 임금상승이나 고용개선보다는 자산가격 변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자산가격이 조정국면에 진입할 경우 소비위축이 빠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며, 이는 실물경제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확산시킬 수 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
문제는 이러한 ‘3A 성장’ 구조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 경로라기보다 여러 취약한 고리로 연결된 임시적 성장 메커니즘이라는 점이다. 특히 AI 투자 부문에 내재한 불안정성은 2026년 미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첫째, AI 산업 전반에서 순환적 투자 구조가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오픈AI, 엔비디아와 코어위브(CoreWeave)처럼 공급사와 고객사가 서로 투자하거나 매출을 보전하는 구조는 실제 최종 수요보다 과장된 성장신호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이는 2000년대 초 통신·인터넷 거품 당시 기업 간 상호 매출 부풀리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둘째, 오라클(Oracle)과 메타(Meta) 등 주요 기업이 체결한 장기 AI 인프라 선구매 계약은 막대한 약정 부채를 발생시키고 있다. 단기실적 안정성에는 기여할 수 있지만, AI 서비스의 수익화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기업의 현금흐름을 장기간 압박하는 요인이 된다. 고정비 부담이 큰 산업 구조에서는 경기 둔화 시 충격이 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셋째, 대규모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특수목적법인(SPV)으로 분리해 부외 조달하는 방식도 빠르게 늘고 있다. 메타의 하이페리온(Hyperion) 프로젝트처럼 재무제표 밖으로 위험을 이전하는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재무지표를 개선해 보이게 하지만 프로젝트의 수익성이 악화할 경우 손실이 한꺼번에 현실화할 위험이 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구조화 투자기구(SIV)가 금융시스템 불안을 증폭시켰던 과정과 유사하다.
넷째, AI 인프라 투자의 상당 부분이 사모신용(Private Credit)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위험요인이다. 은행권이 규제 강화로 대규모 대출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비은행 금융이 AI 투자의 핵심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 사모신용은 시장 환경이 악화할 경우 자금 회수 속도가 빠르다는 특성이 있어 금융시장 변동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미국 주식시장에 나타난 과열신호
이미 미국 주식시장에는 다수의 과열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2025년 2분기 기준 미국 전체 주식 시가총액은 GDP 대비 32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시가총액 대비 광의통화(M2) 비중도 454%로 IT거품(2000년 1분기 443%) 당시를 상회했다. S&P500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5배 내외로 장기 평균인 16배를 크게 웃돌고 있고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술주가 전체의 약 40%를 차지하는 극단적인 쏠림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AI 투자 기대가 약화하거나 자산가격이 조정 국면에 진입할 경우, 주가하락 → 부유층 소비위축 → 경기둔화로 이어지는 경로는 충분히 현실적인 시나리오다. 이 경우 연준은 경기 방어를 위해 금리 인하 폭을 확대할 수밖에 없으며, 2026년 기준금리가 3%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리인하는 장기금리 하락과 달러약세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2025년 12월 4%를 웃돌고 있는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2026년에 3%대 중반까지 하락할 여지가 있다. 과도한 재정적자와 대외 불균형이 누적된 상황에서 달러화의 구조적 약세 압력 역시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2024년 말 108.49였던 달러 인덱스가 2025년 9월 97 수준까지 하락한 데 이어, 2026년에는 90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도 점차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부상하고 있다.
자산시장에 내재한 불균형 조정 불가피
2025년 미국 경제를 지탱했던 ‘3A 성장’ 구조는 단기적인 경기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2026년에는 그 한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성장의 원천이었던 AI 투자와 자산가격 상승이 오히려 금융 리스크의 진원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 궤도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AI 투자 구조와 자산시장에 내재한 불균형을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과정은 성장 둔화와 시장 변동성 확대를 동반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글로벌 투자자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