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폐지로 가는 15년 로드맵…고교학점제 시대 대입의 대전환
학령인구 절반 급감 앞두고 선발에서 성장으로
“절대평가·서논술형 평가로 미래역량 키워야”
서울시교육청이 10일 발표한 ‘미래형 대입 제도 제안’은 2040년까지 15년에 걸친 대입 제도의 근본적 전환을 담고 있다.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과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두 가지 구조적 변화에 대응해 선발 중심에서 성장 중심으로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제안의 핵심 배경에는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있다.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15~17세 고등학교 학령인구는 2000년 216만6000명에서 2025년 136만7000명으로 감소했고 2040년에는 68만6000명으로 현재의 절반 수준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18세 대학진학 대상 인구 역시 2025년 45만6675명에서 2040년 26만1428명으로 급감한다.
서울시교육청은 “학령인구 감소는 ‘누가 더 뛰어난가’의 경쟁이 아닌 ‘모든 학생의 잠재력을 어떻게 성장으로 이끌 것인가’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의 목적 전환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고교학점제와 현행 대입의 충돌 = 올해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학점을 채우는 제도다. 그러나 2028학년도 대입 제도는 내신 상대평가(5등급)와 수능 상대평가를 유지하면서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충돌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서울시교육청은 “2028학년도 대입 제도와 내신 평가 제도는 학생의 과목 선택을 왜곡시키고 학생 성장 중심의 수업과 평가를 무력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23년 12월 교육부의 202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 발표에 대해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경로를 이탈한’ 방안이라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학교 교육은 ‘깊이 있는 학습’과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평가하는 논·서술형 평가 확대’를 지향하지만 수능은 지식 중심의 5지 선다 문항으로 진행되고 있다.
◆3단계 개편안의 핵심 내용 = 서울시교육청의 제안은 2028학년도 즉시 개선과 2033학년도 전면 개편, 그리고 2040학년도 수능 폐지로 이어지는 단계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
2028학년도에는 현재 상대평가와 절대평가가 병기되는 진로·융합 선택과목을 절대평가로 즉시 전환할 것을 요청했다. 수도권 대학 정시 수능 위주 전형 비율 권고 폐지도 제안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정시 모집의 증가는 수능 준비를 위한 고교생의 학업 중단뿐 아니라 대학생의 학업 중단으로도 이어져 N수생 증가로 인한 사교육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2033학년도에는 내신과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한다. 수시와 정시를 통합해 11~12월에 시행하고 고3 2학기 성적까지 반영한다. 대입 전형을 학생부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고 비수도권 지역의 지역기반 선발 전형도 도입한다. 이 시점에 적용받는 학생은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이다. 2030학년도 고1부터 내신 절대평가를 전면 시행해 학교가 2033학년도 대입까지 절대평가 전환에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단계적 로드맵을 제시했다.
수능에는 서·논술형 평가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2033학년도 30%에서 2035학년도 40% 그리고 2037학년도 50% 이상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현행 9등급 상대평가에서 5단계 절대평가로 전환해 학생 개개인의 역량과 성장을 중심으로 대학 교육을 위한 소양 평가 성격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2040학년도에는 수능을 폐지하고 학생 성장 이력 중심의 대입 지원 체계를 정착시킨다. 학점 기반 고교 교육과정 이수 결과를 대입 평가 자료로 활용한다. 대학은 필요시 문제은행식 범교과 융합형 면접이나 서·논술형 평가를 보조자료로 활용할 수 있으며 실시 여부와 구체적 활용 방안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택한다.
◆고교 체제 개편도 동반 추진 = 서울시교육청은 대입 제도 개편과 함께 고교 유형 단순화도 제안했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일반고(중점학교)로 전환하는 내용이다. 내신 절대평가 전면 도입에 따른 학교 유형별 유불리를 보완하고 고교서열화에 따른 경쟁 구도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서울시교육청은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에 따라 일반고에서도 외국어 및 국제계열 교과목을 다양하게 집중 편성하는 등 특화된 다양한 진로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학교가 과도한 경쟁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개인의 맞춤형 성장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학교 유형의 다양화가 아닌 학교 내 교육과정 다양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자율형사립고의 학급당 모집 인원은 현재 35명에서 2028년 30명, 2029년 28명, 2030년 26명으로 점진적으로 일반고 수준으로 감축할 것을 제안했다. 자사고와 국제고 및 외고의 학생수는 일반고 감축 비율에 맞춰 감축 운영한다.
평가 신뢰도 확보를 위해 교육과정·평가지원센터를 시도별로 구축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총괄센터를 두는 방안도 제시됐다. 학교 교육과정 질 관리와 평가혁신 추진의 전담조직으로서 교육청 차원에서 학교의 평가 계획과 평가 실행 및 채점과 결과 환류의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컨설팅하는 구조다.
고교 내신의 서·논술형 평가는 2027학년도 30%에서 2028학년도 40%, 그리고 2029학년도 50% 이상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인공지능(AI) 자동채점 모델을 개발하고 2025년 66개교 시범 운영을 거쳐 2026년 120개교로 확대한 뒤 2027년부터 전체 학교에 상용화한다. 전문 채점관 양성도 2027년부터 추진한다.
◆실현 가능성과 과제 = 이번 제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대입 제도와 내신 평가 기준은 중앙정부 소관이기 때문이다. 고교 유형 전환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도 필요하다.
정근식 교육감은 “고교 및 대학 서열화 해소를 위해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 그리고 대학과 교육청 및 교육전문가와 시민사회 등 범사회적인 거버넌스 구축을 통한 사회적 공론화 및 국민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전과목 내신 절대평가는 오히려 고교서열화 체제를 공고화하는 기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고교서열화를 해소하는 대책과 동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교육청은 “대학 서열화 하에서는 어떠한 혁신적인 평가 체제가 도입되더라도 결국 과도한 입시경쟁과 이로 인한 왜곡이 발생하므로 대학 서열화를 해소하려는 중장기적 대책 시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편적 지식의 전달이 아닌 문제 해결 역량을 함양하는 학교 교육과 고등사고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서·논술형 평가 확대를 위해서 교사가 교수-학습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함께 적정한 교원 수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도 추가로 제안했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