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현의 중남미 톺아보기

트럼프 관세정책과 중남미 주요국의 대응

2025-04-29 13:00:03 게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 수출하는 모든 국가들을 상대로 대규모의 관세 계획을 발표한 후 중남미 국가들도 이번 조치가 자국 경제에 미치게 될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 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그나마 중남미는 니카라과(18%), 베네수엘라(15%)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에 최저 관세율인 10%가 부과되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양호한 상황이다.

하지만 중남미 11개국(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도미니카공화국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멕시코 파나마 페루)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고, 미국이 여전히 이 지역의 가장 큰 교역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관세 조치에 대한 중남미 국가들의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대한 중남미 주요국들의 대응이 흥미롭다.

대미수출이 전체 수출의 83%를 차지하는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은 '관세전쟁'이 아무에게도 이롭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보복관세 대신 협상을 통한 설득에 주력하고 있다. 관세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나라 중 하나인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의회에서 통과된 ‘경제상호주의법’과 세계무역기구 규정을 근거로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응해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의 추종자인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SNS)에 퀸의 노래 ‘프랜즈 윌 비 프랜즈(Friends will be Friends)’와 트럼프에게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게시하면서 아르헨티나에 대한 가장 낮은 관세 부과를 축하했다.

멕시코 셰인바움 대통령의 설득 외교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국경정책과 관세정책으로 미국과의 긴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멕시코 최초의 여성대통령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85%의 역대 최고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녀의 높은 지지율의 비결은 미국의 압력에 차분하고 확고하게 대응하는 외교적 리더십에 있다.

트럼프는 멕시코와 접한 남부 국경에서의 펜타닐 불법 거래와 불법 이민자 유입이 미국의 안보를 치명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며 멕시코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셰인바움 대통령은 보복관세로 맞대응하지 않고 국경 지대에 멕시코 군 병력을 배치하고, 펜타닐연구소를 찾아내 단속하고, 미국이 수배한 주요 마약범 29명을 미국으로 송환하는 등 미국의 요구에 협조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후 미국은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준수한 제품에 대해서 25%의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역사적으로 멕시코는 미국을 상대로 이겨본 적이 없다. 그러나 셰인바움은 국민을 향해 ‘양보하지만 복종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며 멕시코인들의 민족적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지난 2일 발표한 상호관세 적용 대상에 멕시코는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USMCA 원산지 조항을 준수하지 않은 제품은 25%의 관세를 내야하지만, 이민 그리고 펜타닐과 관련된 행정명령이 철회될 경우 25%가 아닌 12%의 관세를 적용받는다.

관세에 대응하는 셰인바움의 전략은 △미국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자국 산업을 강화하려면 멕시코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하고 △양국 자동차산업의 긴밀한 통합을 강조해 더 나은 조건을 확보하도록 미국과 협상을 계속하는 것이다. 셰인바움의 침착하고 인내심 있는 협상 전략이 관세 폭풍에서 멕시코를 구해냈다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의 친분 외교

밀레이는 트럼프 숭배자 중 한명으로 트럼프가 당선 후 최초로 만난 외국 정상이자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된 극소수의 외국 정상 중 한명이었다. 밀레이는 취임 후 15개월 동안 10번이나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이 전세계에 상호관세를 발표한 날 밀레이는 플로리다에서 트럼프의 슬로건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와 관련된 상을 수상했다. 그는 트럼프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를 자신의 핵심 동맹으로 여긴다. 미국에서 열린 보수행동회의에 참석해 공공지출 감축의 상징이 된 전기톱을 머스크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밀레이와 트럼프는 반체제적이고 호전적인 발언, 정제되지 않은 언어의 사용,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한 직접 소통, 반중국 및 반사회주의, 반워키즘(wokism) 등 태도와 사상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밀레이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탈퇴했고 파리기후협정 탈퇴도 검토 중이다.

그는 심지어 정치적 비용을 치르면서도 트럼프 밈코인을 모방한 암호화폐를 홍보하기까지 했다. 전세계가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비판하는 가운데 밀레이는 트럼프의 확고한 수호자로 트럼프의 이념과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트럼프는 아르헨티나 알류미늄과 철강에 25%, 그리고 아르헨티나산 수입품에 10%의 최소관세를 부과했지만 밀레이는 트럼프와의 좋은 관계 덕분에 낮은 관세가 부과됐다면서 트럼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밀레이는 스스로 무정부 자본주의자라고 할 만큼 보호무역주의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관세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다. 그는 트럼프의 관세 조치가 자유무역에 대한 공격이 아닌 지정학적 전략이라고까지 옹호했다.

트럼프와의 친분을 활용한 밀레이의 전략적 동맹은 아르헨티나의 최대 현안인 유동성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새로운 구제금융 협정 체결에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연쇄 채무불이행으로 악명 높은 아르헨티나가 지난 4월 12일 IMF로부터 200억달러의 신규 대출을 확보했다.

밀레이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여 관세의 영향을 완화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는 아르헨티나와의 협정 체결에 열려있으며 무엇이든 가능성을 모색해 볼 것이라는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국가 정상 간 친밀감이 협상카드가 부족한 아르헨티나에게 지렛대가 됐다고 볼 수 있다.

각국 조건에 맞는 실용적 대응

트럼프의 공격적인 관세조치는 무역의 재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만은 아니며 세계 경제와 정치 세력을 재편하려는 시도다. 트럼프는 취임 후 몇주 동안 중남미를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에 두었다. 이민자 추방, USMCA 협정, 파나마운하 문제 등에서 중국과의 경쟁에 대한 조치를 취했다. 특히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중미와 카리브를 순방했다. 이는 이 지역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였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의 관세 위협에 불확실성을 악화시킬 수 있는 반응적인 조치를 피하고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중남미는 다른 지역보다 낮은 관세가 적용되었다. 특히 멕시코는 USMCA 협정을 준수하는 제품에 대해서 관세가 면제되기 때문에 매우 유리한 조건에 있다. 미국 노동시장과 공급망은 중국 제품을 대체하는 저가 제품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기업들은 결국 멕시코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다.

멕시코는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 그리고 미국과의 근접성으로 노동집약적 산업뿐만 아니라 첨단기술 산업에도 이점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공급망이 붕괴된 이후 미국과 멕시코의 통합이 확대됐고 이미 강력한 산업적 유대관계가 강화되었다.

브라질도 낮은 관세와 제조업 인프라, 저렴한 노동력 및 지리적 근접성으로 제조업의 새로운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브라질의 농산물 수출 확대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지정학적 변화와 관세 위협은 중남미 국가들에 혁신을 통한 미래지향적인 의제를 개발하고 사업 파트너를 다각화하는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 이들 국가 지도자들이 이번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손혜현

고려대 연구교수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