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판도라의 상자 열린AI 기술 경쟁
며칠 전 챗GPT 40에게 5.11과 5.8 중에서 어느 수가 더 큰가를 물었다. 몇 달 전 유튜브에서 AI 모델이 소수점 문제를 잘 못 푼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전히 틀린 답을 제공해서 고치는 게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소수점 첫째 자리에서 1<8이지만 5.8은 사실상 5.80으로 생각할 수 있고 두번째 자리가 0이기 때문에 5.11>5.80 -> 5.11>5.8’이라고 설명한 대목에서는 어이가 없었다.
한심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는 척척박사 같은 답변을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쏟아내어 최근 세계 전체를 AI 열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오픈AI에 따르면 주당 챗GPT 방문객은 작년 12월 3억명에서 금년 2월 4억명으로 증가했으며 연말쯤에는 10억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급가속하는 AI기술, 챗GPT 방문객 올해 연말쯤 10억명에 이를 것
AI 흥행에 성공한 대형언어모델(LLM) 기반 생성형 AI는 환각 문제를 비롯하여 완성도가 미흡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출시되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시장의 관심 폭증으로 상황은 180도 변했다. 빅테크 10여개 기업의 사활을 건 경쟁이 시작되고 기술 선점의 전선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의 대표인 하사비스와 메타의 AI 수석과학자인 얀 르쿤은 공통적으로 언어모델인 LLM은 현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멀티모달 현실 세계를 학습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세계 모델’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글은 조만간 에이전트 모델 아스트라(Astra)를 출시할 예정이다.
AI 에이전트는 지난 3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생성형 AI의 후속으로 크게 부각될 AI 발전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예약이나 주문 등 이용자의 일을 AI가 대행하는 비중이 크게 확대될 것이다. 간과해서는 안 될 변화 중의 하나는 AI 에이전트가 물품 구매를 담당하게 되면 가성비가 가장 좋은 제품을 AI가 찾아 나설 것이므로 시장구조가 플랫폼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재편된다는 것이다. 즉 승자독식 구조의 플랫폼 경쟁에서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누구라도 가성비 좋은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이 유리한 이상적인 경쟁체제가 정착될 수 있다. 로봇을 비롯해서 기계에 AI를 접목하는 피지컬 AI 분야도 급속한 기술발전이 예상된다. 자율주행 스마트 팩토리 등 일반 하드웨어 산업도 AI 변화 물결에 휩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에 뒤처진 한국, AI 후발자 우위 찾기에 국가전략 집중해야
AI 기술이 실생활과 산업으로 확산되는 시기에는 LLM 모델에서 나타난 환각 문제와 같은 불완전성은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 대형모델을 통한 규모의 법칙과 함께 목표 달성률을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제고할 수 있는 강화학습 도입 등의 획기적인 혁신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해 하사비스는 대형언어모델을 가능케 했던 트랜스포머와 같은 돌파기술이 한 두개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바야흐로 생산공정에 기계가 도입된 18세기 산업혁명과 같은 대격변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최전선 AI 경쟁에 명함도 내밀지 못한 후발국인 우리나라는 후발자 우위의 최대화에 집중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최전선 경쟁의 기술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선두그룹의 시행착오를 면밀하게 분석하며 최적의 타이밍에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준비와 전략을 세워야 한다.
가장 시급한 일은 ‘국가 AI 정보센터’를 설립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LLM 모델에 기반한 파운데이션 모델 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과연 모델의 강건성이 충분한지 하사비스에게 문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 AI 기술은 데이터와 활용 측면에서 사회적 기술이면서 무한 복제 기술이다. 각자도생은 필패일 뿐으로 한국의 강점인 민관협력과 선택과 집중을 다시 살려야 한다. 20여년 공들여온 벤처기업의 활약을 성원하며 걸출한 인재가 나타나 K-AI를 빛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