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품질 높이려 당근 제시했지만 회계업계 “실효성 없어”
금융당국, 회계·감사 품질제고 방안 발표 … “큰 변화 없을 것”
중견·중소회계법인 혜택주는 것 같지만 결국 빅4 중심 불만 커
“금감원이 먼저 바뀌어야” … 표준감사시간제 사실상 유명무실
금융당국이 기업의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해 회계법인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사실상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견·중소회계법인의 품질관리시스템을 강화해 감사품질을 향상시키고 기업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게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회계업계에서는 회계법인들의 실질적 변화를 바란다면 금융당국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쓴소리를 하고 있다.
4일 금융위원회는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한 회계감사 품질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회계부정 및 부실감사 제재 강화 △외부감사의 독립성 제고 △외부감사의 전문성 강화 △감사품질 제고 인센티브 확대 등 4가지 추진 방향을 밝혔다. 이 중에서 ‘감사품질 제고 인센티브 확대’ 방안은 회계법인 간 감사품질 경쟁을 촉진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금감원 감리 방식부터 개선해야 = 당국은 회계법인을 소속 회계사수와 전체 회계사수 대비 품질관리 인원 등을 기준으로 군별(가~라)로 분류해 지정감사(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지정)를 받아야 하는 회사를 규모별로 차등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속 회계사수가 500명 이상인 가군 소속 회계법인(현재 빅4)은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 대한 지정감사가 가능하다. 하지만 나군에 속한 회계법인(중견회계법인 14곳)은 자산 2조미만 기업에 대해서만 지정감사를 할 수 있도록 제한돼 있다.
나군 회계법인은 감사품질이 우수해도 2조원 이상 회사를 지정받을 수 없는 등 업계에서는 감사인 지정방식이 지나치게 대형회계법인인 빅4 중심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금융당국은 제도 개선을 통해 감사품질 우수법인에게 배정대상을 확대하는 ‘군 상향 특례’를 신설하기로 했다. 나군 중 품질이 우수한 법인을 가군으로 지정해 자산 2조~5조원 회사를 지정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다군 중 품질우수 법인은 나군으로 지정해 자산 5000억~2조원 회사를 지정받는 게 가능해진다.
하지만 회계업계에서는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실익이 낮다며 신청 회계법인이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국이 요구하는 ‘감사품질 우수’의 기준을 맞추는 것에 대한 불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고, 이는 그동안 품질관리 감리를 받아온 회계법인들의 경험에서 체득한 반응이다.
한 중견회계법인 대표는 “금융감독원의 품질관리 감리를 받으면 ‘품질관리시스템을 잘 갖춰도 지적건수가 5건, 못해도 6건’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차별성이 없다”며 “회계법인 규모에 따라 지적건수가 결정되는 듯한 모양새여서 차라리 하지 말자라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품질관리에 공을 들인 회계법인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특례를 신청하는 회계법인이 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빅4에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비슷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산하 상장사 회계감독위원회(PCAOB)에서 검사를 받아본 빅4들은 금감원과 차이가 크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해서 지적하고 회계법인의 해명이 타당하면 문제를 삼지 않지만, 금감원은 일정 수준 이상의 지적을 실적으로 여기고 있어서 해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는다는 것이다. 품질관리시스템을 잘 갖춘 곳일수록 지적사항을 찾아내기 위해 더 강도 높은 감리를 진행한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SEC 산하 검사는 굉장히 무섭기는 하지만 정확히 잘못한 곳을 찌르는 반면에 금감원에서 오는 것은 무섭기 보다는 귀찮다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라며 “금감원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 대한 지정감사를 가군 소속 회계법인만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자, 중견회계법인들의 반발이 컸다. 이번에 특례 제도를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형식적이고 생색내기에 그쳤다는 부정적인 평가와 함께, 오히려 빅4에 혜택을 준다는 불만까지 더해졌다.
금융당국은 감사인 점수 산정 방식에서 수습회계사 가중치를 높이기로 했는데, 수습회계사가 많은 빅4에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감사인 점수가 높을수록 지정감사를 할 수 있는 기업이 많아진다는 점에서 매출 상승과 연결된다.
수습회계사에 대한 가중치를 높인 것은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하는 회계사들이 최근 몇 년간 증가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빅4 등 회계법인들이 최대한 채용 인력을 늘려서 미수습(미지정) 회계사를 수용할 수 있게끔 사실상 인센티브를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실감사 패널티 강화 … 실제로 될까 = 이번 제도 개선방안에는 부실감사에 대해 패널티를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회계업계에서는 실제로 이행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 감사투입시간과 감사보수가 지속적으로 감소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 ‘과도한 수임 경쟁’을 문제로 지적했다.
기업들이 감사품질과 무관하게 보다 낮은 감사보수를 제시하는 감사인을 선택하면서 출혈경쟁이 벌어졌고, 낮아진 감사보수로 인해 감사시간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감사시간 과소투입 등으로 감사기능이 약화된 감사인 및 해당 회사에 대해 심사·감리, 감사인 지정 등 패널티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합리적 사유 없이 표준감사시간(산출된 시간의 하한), 전년도 실제 감사투입시간, 수임시 정한 감사투입예정시간보다 현저히 미달한 경우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중소회계법인의 한 대표 회계사는 “패널티가 실제 부과되면 회계법인들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도 “감사보고서에 작성되는 감사시간만 봐서는 적발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보고서에 작성하는 감사시간은 얼마든지 허위로 작성할 수 있는 만큼, 회계사들이 내부적으로 작성하는 타임테이블과 대조해봐야 정확한 감사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금감원이 의지를 갖고 실제 감사시간을 확인해야 가능하다”며 “다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경쟁 입찰을 통해 낮은 감사보수를 제시하는 회계법인을 감사인으로 선임하는 기업들이 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금감원이 강도 높은 감독과 검사를 병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표준감사시간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도 ‘저가 수임, 출혈경쟁’이 촉발된 이유 중 하나다.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대대적인 회계개혁으로 도입된 중요제도 중 하나가 표준감사시간제다. 기업의 규모와 업종에 따라 일정 시간 이상을 감사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강행 규정이 권고 규정으로 바뀌면서 감사 현장에서 더 이상 지켜지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제도 개선에서 ‘표준감사시간 부분적용 정상화’를 발표했다. 회사부담 등을 고려해 규모 순에 따라 순차적으로 도입하고 일정비율만 적용하는 부분적용 조치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따라서 2026년부터 자산 1000억원 이상 2조원 미만 상장사에 대해 100% 적용하고 자산 1000억원 미만 상장사, 자산 5000억원 이상 비상장사는 2027년부터 상향하기로 했다.
하지만 회계업계에서는 권고 규정에 따라 이미 실효성이 크게 낮아진 표준감사시간제를 100% 적용한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