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AI 시대의 도래, 부상하는 ‘노-로 갈등’
인공지능(AI) 시대가 예상보다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AI로 무장한 로봇이 인간의 두뇌까지 대체, 일선 노동 현장에서 일자리를 놓고 인간과 로봇이 첨예하게 맞서는 ‘노-로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엄청난 격변이 예상된다.
미국에서는 이미 초양극화 현상과 함께 중산층 붕괴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AI가 법률·회계·통번역 등의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기업들의 업무 행태가 바뀌고 있다. 자료 수집과 분석, 보고서 초안 작성, 판례 조사 등의 업무를 AI 혼자 맡거나 직원 1명이 AI 도움을 받아가면서 처리하고 있다. 이로써 기업의 채용 동기가 약해지면서 채용 자체가 줄고 있다.
인간과 로봇 첨예하게 맞서는 ‘노-로 갈등’ 수면 위로 떠올라
더구나 우리나라는 노동 경직성이 강해 AI발 일자리 감소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줄어든 청년(15~29세) 일자리 21만1000개 중 20만 8000개가 AI 노출도가 높은 직업군이었다. 1월에도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에서 10만 명 가까이 감소, 2013년 산업분류 개편 후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정신노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혁명 때처럼 육체를 이용한 업무에서도 피지컬 AI가 인간의 경쟁 상대로 떠올랐다. 현대자동차그룹은 1월 초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선보였다. 내후년에 미국 조지아 공장부터 투입시키겠다는 로드맵까지 내놓았다. 배터리가 소진되면 스스로 교체하는 이 로봇은 숙련공의 동작을 학습해 즉각 모방하는 등 인간처럼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다.
로봇은 파업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아프지도 않는다. 휴가를 가지 않고 야근 수당이나 4대 보험료,복리후생비, 휴게 공간, 식당, 조명, 냉난방도 필요없다. 땀방울 등 오염물질도 내뿜지 않아 정확도가 99%를 넘는다. 그러니 인간보다 생산성이 월등히 높다.
예전 로봇은 사람이 짜준 코드대로만 움직였으나 지금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 심하게 엉켜있는 배선을 푸는 등 비정형 작업이 가능하다. 또한 인간은 선배에게서 기술을 물려받는 데 여러 해가 걸렸으나 로봇은 한 대가 새로운 작업을 배우면 전 세계 같은 종류의 로봇이 동시에 그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가격마저 싸져 아틀라스의 경우 대당 2억원 정도이고 연간 유지비도 1400만원에 불과하다. 현대차 근로자의 10%만 이 로봇으로 대체해도 연간 1조7000억원의 인건비 절감이 가능하다.
현대차 노조는 아틀라스가 공개되자 즉각 위협을 느끼고 “노사합의 없이 단 1대도 들어올 수 없다”고 강경한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로봇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여론의 질타가 있자 이 로봇의 공장 투입에 제동을 건 것이 아니고 기술혁신이 가져오는 변화에 적응하도록 돕는 사회적 지원 결여를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발 물러섰다. 노조도 피지컬 AI 기술의 인간 대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밥그릇 지키기’ 식의 소모적인 갈등이 아니다. 인간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미래를 설계하는 지혜다. 기술 발전의 과실을 소수가 독점할지, 아니면 많은 사람이 골고루 누릴지는 전적으로 사회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최근 다보스포럼에서 “AI와 로보틱스가 세계 경제의 폭발적 성장을 이끌게 될 것”이라면서 로봇의 도입이 자동차 업계뿐 아니라 조선·철강·석유화학과 같은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 업종까지 확산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로봇공학과 AI는 모두를 위한 풍요로 가는 길이나 단기적으로 실업이 문제여서 앞으로 3년부터 7년까지가 고비"라고 덧붙였다.
급변하는 미래에 대한 대응책 시급히 마련해야
국내외에서는 생산 현장에 AI 로봇이 투입되면 오히려 정규직 일자리가 늘고 임금이 높아질 것이라는 보고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노동자가 갑자기 AI 프로그래머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주종은 로봇 설계나 유지 보수를 비롯해 데이터 분석 등 고숙련 직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혁신이 멈추면 고비용과 저효율, 낡은 산업만 남는다. 결국 국민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하지만 일터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은 당장 빈곤과 싸워야 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사회안전망이 강조되면서 AI 로봇세 징수와 기본소득 제공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급변하는 미래에 대한 정답은 없다. 시급히 길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