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세대 간 일자리 전쟁’ 막아야 한다

2025-05-07 13:00:00 게재

한국 프로야구(KBO) 리그의 인기몰이 기세가 대단하다. 지난해 사상 처음 1000만 관중(연간 누적기준)을 돌파하더니 올해는 개막 이후 175경기(연간 720경기 진행) 만에 300만명을 넘어섰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1200만 관중이 예상된다. 지난해 이전 최대 관중 기록이 2017년의 840만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얼마나 인기가 폭발적인지 가늠할 수 있다.

프로야구 인기가 달아오른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신구(新舊)조화를 이뤄낸 10개 구단 선수들의 향상된 경기력이 첫손에 꼽힌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0대 나이의 신인들이 당당하게 주전으로 나서는 한편 불혹(不惑·40세)을 넘긴 나이에도 맹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노장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는 팬들에게 더없는 볼거리다. 기아 타이거즈의 최형우(43)와 SSG 랜더스의 노경은(42), 삼성 라이온즈의 강민호(41) 등은 웬만한 팀의 코치들보다도 나이가 많다. 운동선수들 사이에 ‘30세=환갑’으로 불렸던 때가 오래되지 않았고, 지금도 대부분 선수가 3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은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에 비추어 대단한 존재들이다.

실력 인정받으면 ‘정년' 없는 시스템, 폭발적인 인기 누리는 프로야구

이들이 이렇게 오래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프로야구에 ‘정년’이 없는 덕분이다. 실력을 인정받기만 하면 나이와 관계없이 경기장에 나갈 수 있다. 프로야구를 운영하는 구단과 선수들 사이에 “철저한 성과(경기력) 평가를 통해 각 선수의 고용 여부와 급여수준을 결정한다”는 합의가 이뤄져 있어서다. 이런 장치가 선수들로 하여금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고, 그래야 팬들이 경기장에 찾아와 구단들의 매출 증대와 함께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커지기 때문이다.

저출생·고령화 시대의 인력난 해법으로 정년연장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 기업과 노동조합의 관계자들이 들여다볼 만한 시스템이다. 현재 60세로 돼 있는 직장인들의 정년을 65세로 5년 늘리는 방안을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논의가 뜨겁다. 인건비 추가부담 등을 우려해 신중론을 펴고 있는 기업들과 달리 정치권과 노동계에서는 정년연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에서 국내 최대 노조단체인 한국노동자총연맹(한국노총)의 지지를 받는 조건으로 정년연장을 연내 제도화한다는 협약서를 체결했다. 사회보장이 충분치 않은 터에 평균수명이 80세 이상으로 늘어난 상황을 방관하면 노인빈곤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사회적 수용능력이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저성장시대에 들어서면서 예전 같은 일자리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일자리 총량이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정년이 5년 늘어나면 청년들의 직장 진입이 그만큼 막힐 수밖에 없다. 2016년 58세였던 법정 정년이 60세로 연장된 이후 지난해까지 청년근로자(만23~27세)가 11만명 줄었다는 보고서(한국은행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가 최근 발표되기도 했다. 최근 경기침체까지 더해지면서 구직자 10명 가운데 7명꼴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정파 아닌 국민 염두에 놓고 진지한 해법 찾아야 할 때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고령자와 청년층 간에 벌어지고 있는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을 단번에 해결해 낼 묘책은 없다. 양쪽 세대가 조금씩 양보해야 하며 그 첫걸음으로 호봉제(근무 성과와 관계없이 연차에 따라 매년 급여가 자동 인상되는 제도)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이다. ‘호봉제 개편’은 ‘친노동’을 표방했던 문재인정부에서도 공약으로 내걸었던 정책이지만 대형노조들의 거센 반발로 아직껏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파’가 아니라 국민 모두를 염두에 놓고 치열하고도 진지하게 해법을 찾아내야 할 과제다.

이학영 경제사회연구원 고문 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