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중국과 척을 질 필요는 없다
최근 중국기업들이 보여주고 있는 약진에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딥시크의 개발과 테슬라에 뒤지지 않는 전기차 업체 BYD의 기술력도 눈길을 끌었지만 필자를 가장 놀라게 했던 건 가전제품 제조업체로 널리 알려진 샤오미의 전기차 출시였다. 샤오미 전기차는 작년 3월에 처음 판매됐는데 출시 직후 고객들로부터 24만여대의 선주문을 이끌어냈다.
샤오미 전기차가 출시되기 한달 전 애플은 전기차 사업 철수를 발표했다. 왜 애플은 실패했고, 샤오미는 성공했을까? 압도적인 ‘공급망의 격차’가 성패를 갈랐다. 배터리부터 차체까지 중국은 모두 생산이 가능한데 미국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도 자국 내에 주요 제조업의 공급망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샤오미의 성공과 애플의 실패, 압도적 공급망 격차가 성패 갈라
바이든은 보조금으로, 트럼프는 고율관세를 통해 자국 내 공급망 확충을 도모하고 있지만 이런 시도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미래는 예단하기 힘들지라도, 현재의 역량은 확실히 중국이 우위에 있고 샤오미와 애플의 전기차 프로젝트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전기차뿐만 아니라 조선과 배터리 가전 디스플레이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중국 기업들이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십여년 전쯤에는 주요 산업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의 점유율이 비슷한 동북아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었다. 일본은 기술력에는 확실히 우위가 있었지만 유연성이 현저히 결여돼 저무는 해 취급을 받았고, 한국은 기술력과 안정적인 물량 생산에서 장점을 가져 떠오르는 태양과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중국은 가격 경쟁력은 높았지만 뭔가 허술함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젠 거의 모든 영역에서 중국이 우위에 섰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산업에서 중국과 한국·일본의 점유율 격차는 커지고 있다.
일취월장하는 중국 기업들의 성장을 폄하하는 시각도 있다. 중국 기업들의 약진은 공산당 우위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체제에 기인하고 있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중국 제품들의 경쟁력은 가성비에 있다. 질은 그저 그렇지만 가격은 매우 쌌던 게 과거 중국 제품들이 가지고 있었던 가성비의 본질이었다면 요즘은 훌륭한 품질을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진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중국 비판론자들은 제품을 생산해 내는 밸류체인 어딘가에 마진을 고려하지 않고 싸게 중간재를 공급하는 플레이어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진핑 체제에서 국유기업의 민영화는 현저하게 후퇴하고 있는데 국유기업들에게 수익성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국가의 전략산업에 마진을 고려하지 않은 중간 공급자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
일대일로 경쟁하기 힘들다면 강자의 밸류체인 협력자도 고려할 만
필자는 중국 기업 전반의 지배구조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중국내 밸류체인에서의 이익 배분과 관련된 이슈일 따름이다. 경위야 어떻든 한국 기업들이 중국이 내놓고 있는 고품질의 고가성비 제품과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한국 기업들과 대화를 해보면 중국 기업들과의 협업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중국 기업들에 대한 공포심도 크고 그들을 폄하하는 태도도 있다고 본다. 중국 기업들이 한국을 넘어서고 있다는 자각은 최근 3~4년의 일이고 그 이전까지의 오랜 기간 동안 한국 기업들이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이 주도하는 밸류체인에 편입되는 것은 거부감이 크지 않은 것 같다. 인플레이션방지법(IRA)과 반도체법(Chips Acts)이 시행된 이후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급증했고 관세 압력에 노출된 최근 상황도 비슷하다.
일대일로 경쟁하기 힘들다면 강자의 밸류체인 속에 협력자로 참여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삼성과 현대차 등 한국의 대기업들이 약진할 때 이들의 성취를 인정하지 않았던 거의 유일한 집단은 일본의 관료와 기업들이었다. 이들이 범한 우를 우리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