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기업 의욕 살아야 경제도 산다

2025-05-27 13:00:02 게재

1주일 뒤로 다가온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입후보자들의 공약경쟁이 뜨겁다. 그런 가운데 이전 선거와 확연히 달라져 주목을 모으는 게 있다. 유력 후보들이 하나같이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변신이 특히 눈길을 끈다. 3년 전 대선 때 분배 우선정책을 내놨던 것과 달리 이번엔 ‘성장’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선거캠프를 꾸린 뒤 대변인이 첫 공식브리핑을 “성장경제 행보를 진행한다”는 말로 시작했을 정도다. “단기부양이 아닌 지속가능한 성장, 진짜 성장의 시대를 열겠다”고도 했다. 기업관(觀)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기업인들을 모은 자리에서 “경제를 살리는 중심은 기업”이라며 “정부는 민간 영역의 전문성과 역량을 믿고 충실히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유럽 국가들의 경제 부진이 시사하는 것

백번 맞는 말이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그의 말이 정곡을 꿰뚫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내 시장은 물론 통화까지 통합한 유럽연합(EU)을 출범시키며 한때 미국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듯했던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은 요즘 몰골이 말이 아니다. 역내 최대국가인 독일이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의 덫에 걸린 것을 비롯해 대부분 침체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다.

유럽 경제의 부진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미국 50개주와 경제규모를 비교한 2021년 지표에서 독일은 39위, 프랑스는 49위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미시시피주와 경제력이 별로 다를 게 없는 처지가 됐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오픈AI 등 첨단기술 기업들의 활약에 힘입어 탄탄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미국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유럽 국가들이 심각한 부진의 늪에 빠진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처럼 역동적으로 글로벌 무대를 휘젓는 신기술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전형적인 ‘구(舊)경제’ 기업인 사치재(명품) 제조회사 LVMH(루이비통 모에 헤네시)가 요지부동으로 유럽 내 시가총액 1위 기업이다.

유럽의 부진 속에서 ‘글로벌 경제 1강’ 독주를 꿈꾸던 미국을 긴장시키고 있는 존재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다. 전기자동차, 배터리, 드론, 5G 네트워크장비, 태양광 등 글로벌 신성장산업 분야에서 미국과 유럽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떠오른 데 이어 최근에는 생성형 AI시장에서도 강력한 도전자로 급부상했다. 중국이 돌풍을 넘어 태풍의 기세로 글로벌 시장에 진군하고 있는 것은 세계 최정상급 기업들이 즐비한 덕분이다. 전기차의 지리, 5G의 화웨이, 배터리의 CATL, AI의 딥시크 등이 대표적이다.

국가경제의 성패와 흥망의 열쇠가 기업들에 쥐어져 있음을 미국과 중국, 유럽의 요즘 사례가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미국·중국과 달리 유럽은 왜 이렇다 할 혁신기업이 등장하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경제 전반이 침체의 골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이 점을 제대로 짚어내는 게 중요하다. 그 주요 원인은 다름 아닌 규제다. 유럽 국가들은 역사와 문화가 오래된 만큼 전통과 인습을 중시하는 성향이 강해 새로운 산업의 출현과 성장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가 많기로 유명하다.

기업의 신산업 진출에 관대한 미국과 중국

중국은 다르다.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강고한 사회주의 일당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글로벌 무대를 겨냥한 기업들의 신사업 진출에 대해서는 관대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신사업의 경우에도 ‘일단 허용하고, 부작용이 드러나면 그때 가서 손본다’는 네거티브 규제(법률이나 정책으로 금지된 게 아니면 모두 허용)제도를 적용한다. 기술력이 부족하다 싶은 산업분야에서는 모방이나 그 이상의 방법을 써서라도 세계 최고수준 등극을 위해 민관(民官)공조를 아끼지 않는다.

미국은 ‘개척자의 나라’ 유전자가 남아 있어서 기업들의 신규 사업 실험과 진출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시장에서 고객들의 선택을 받은 기업가들에게는 막대한 보상이 돌아가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어서 엔비디아와 테슬라 같은 ‘첨단기술 신데렐라’ 기업들이 끊임없이 탄생한다. “미국은 혁신하고, 중국은 모방하며, 유럽은 규제한다(America innovates, China replicates, Europe regulates)”라는 말은 세 국가·지역의 산업생태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압축적으로 설명해준다.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진짜 성장’을 말하려면 “우리나라는 이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는가”를 제대로 짚고 따져보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이학영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