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 국채시장, 트럼프정책 심판하나

2025-05-29 13:00:01 게재

최근 들어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달러자산 매도)’ 상황이 펼쳐지면서 미국정부 재원조달 핵심인 미국채 장기물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불확실성이 전통적 안전자산인 미국채의 전망을 어둡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지표는 미국채 10년물 기간프리미엄(term premium)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0.71%까지 오르며 2014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간프리미엄이란 투자자들이 만기가 긴 채권에 추가로 요구하는 금리 수준을 의미한다. 채권을 장기간 보유하는 데에 따른 위험을 반영한 보상이다. 기간프리미엄은 투자자들이 미국채 장기물의 향후 리스크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정보다. 투자자들은 무역전쟁과 세금감면 등 트럼프의 정책이 이미 약세조짐을 보이는 경제성장과 고질적인 인플레이션, 막대한 재정적자, 미국채의 수요·공급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해 성장률 1% 미만, 재정적자 더 악화될 수 있어

투자자들은 기간프리미엄이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정부의 재정적자가 커지면서 미국채 발행량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1년 내 약 9조달러 규모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이와 별도로 미 재무부는 올 2~3분기에 1조500억달러의 신규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1분기 역성장을 기록한 미국 경제성장률은 올해 1% 미만으로 예상된다. 이것이 현실화하면 2020년 이래 최저치로 미국 재정적자는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지표 중 하나는 잠재성장률과 차입비용을 비교하는 것이다. 차입비용이 장기적으로 성장률보다 높으면 신규차입 없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증가한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2025년 기준 미국의 잠재성장률을 1.8%로 추정한다.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를 고려하면 명목성장률은 3.8% 수준이다.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은 현재 약 4.3% 안팎으로 이미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현재의 성장수준으로는 부채규모를 감당할 수 없다. 미국채 10년물 수익률이 명목성장률 이상으로 상승하면 부채의 파괴적 소용돌이는 빠르게 촉발될 것이 수학적으로 확실하다.

기간프리미엄이 중요한 이유는 극히 적은 수준의 금리가 올라도 미 정부 부담이 막대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연간 이자로 지출하는 비용이 1조달러에 육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 회계연도 정부이자가 8820억달러로 국방비 8740억달러를 넘어섰다. 현 추세대로라면 올해 9520억달러, 내년 1조100억달러로 예상된다.

4월 초 미국자산의 동시하락은 미 정부의 재정조달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미국채가 투자자의 신뢰하락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최근 달러자산 가격이 하락하자 미국 주요 은행들이 일부 헤지펀드에 2020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마진콜(Margin Call, 추가 증거금 요구)을 통보했다.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헤지펀드들이 담보로 잡혀있던 미국채를 급매물로 처분했다. 미국채 매도세는 커진 리스크에 따라 투자자들이 더 큰 보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헤지펀드들이 국채를 팔기 위해 ‘베이시스 트레이드’(Basis Trade)를 청산하고 있다. 이는 국채 선물과 현물의 가격차이(Basis)를 활용한 차익거래 전략으로 50~100배의 레버리지를 활용한다. ‘100배 레버리지’란 빌린 돈으로 자기자본의 100배 규모를 거래하는 것을 말하는데 자산 가격이 1%만 하락해도 원금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

현재 운용 중인 베이시스 트레이드 규모는 약 8000억달러(약 1187조원)에 달한다. 외부충격이 발생하면 이 거래의 청산이 국채시장에 매도압력을 급격히 가중시킬 수 있다. 이번 청산 움직임은 아직 주식시장에까지 충격을 주는 수준은 아니지만, 미국채시장 유동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당국과 투자자 모두 긴장하고 있다.

기간프리미엄 고공행진, ‘약달러 전략’에 차질

트럼프 대통령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약달러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다가오는 미국채의 만기상환과 신규발행 때 이자부담을 최대한 낮추겠다는 의도다.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위해 투자비용을 낮춘다는 점에서도 약달러 전략은 중요하다.

미국채 10년 기간프리미엄의 고공행진이 계속되면 트럼프정부의 약달러 전략은 차질을 빚게 된다. 미국채시장의 반응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미국채시장이 트럼프정책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미국채시장의 반란이 미국경제는 물론 전세계 다른 나라의 경제에 미칠 충격에도 대비해야 한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