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은행 ‘팔 비틀기’는 이제 그만

2025-05-30 13:00:03 게재

“어려운 때이기 때문에 (은행들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지원 방안을 충실히 잘 이행해달라.”

“은행 고금리로 국민 고통이 크다. 수익이 어려운 국민,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 상생금융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라.”

내용으로만 보면 한 사람이 말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적대적 관계였던 두 사람의 발언 내용이다. 앞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가 올해 초 시중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당부한 내용이고, 뒤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초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말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금융 부담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금융권 벌써부터 새 정부의 ‘상생금융’ 요청 우려

은행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든 야든 은행이 고금리 고물가로 고통받는 국민을 상대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이자 장사를 해서 배를 불린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서민이 은행의 종노릇 한다’ ‘은행이 갑질을 많이 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은행 거래를 해본 사람이라면 일부 공감할 것이다. 돈이 넘쳐날 때는 “좋은 조건으로 대출해 주겠다”고 달콤하게 유혹한다. 그러다 은행이 도와주면 한 고비를 넘길 수 있을 법할 때는 오히려 외면한다. 심한 경우 대출회수에 나서기도 한다. ‘은행이 비 올 때 우산 뺏는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당연히 은행은 역대급 실적을 올려도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 또 매년 초 임직원 성과급을 지급할 때는 언론의 호된 비판을 받아야 한다. 스스로 경영 혁신을 열심히 해서라기보다는 단순히 예대금리 차 덕분에 얻은 ‘횡재’였는데 무슨 성과급이냐는 질책인 셈이다.

이런 분위기 탓에 은행들은 벌써부터 새 정부의 ‘상생금융’ 요청을 우려한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채무 탕감 공약까지 나왔으니 당연한 걱정이다.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고통을 겪는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하는 상황이니 사회적 공감대도 충분한 셈이다. 여기에 역대 정권은 초기에 은행의 사회적 역할을 거론하면서 은행권에 공익기금 출연 등을 요청해 왔다.

그러나 정권의 이런 요구는 이제는 청산해야 할 구 시대적 행태다. 은행이 번 돈은 엄밀히 말해 주주들 몫이다. 은행 지분이 전혀 없는 정부가 상생금융을 압박하는 것은 은행 경영진에게 배임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야속한 얘기지만 시장 원리로만 따지면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는 금융 소외계층을 위해 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정부가 사회정책을 통해 돌봐야 한다.

더구나 은행의 돈벌이를 무조건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지표로만 보면 제대로 벌지 못한다고 질책해야 할 판이다. 선진 은행과 비교해보면 우리 은행의 수익성은 한참 뒤지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올해 1분기 자기자본순이익률은 9.55%로, 20%에 가까운 선진 은행에 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우리 금융 관치 넘어 정치금융으로 전락했다는 비판 끝내야

은행도 주식회사인 만큼 성장해야 하고 수익성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주주에게 배당을 하고, 자본 확충을 할 수 있고 대손충당금도 충분히 쌓을 수 있다. 지금 같은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대출을 확대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높은데 이는 자본 확충 없이는 불가능하다.

은행이 휘청거리면 우리 경제는 멈춰설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외환위기 당시 금융시스템 붕괴로 전례없는 경제 위기를 겪었던 사실을 떠올려보라. 그런 점에서 새 정부에서는 은행 팔 비틀기보다는 은행 돈벌이를 격려해주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금융은 이미 관치를 넘어 정치금융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 않은가.

윤영호 법무법인 화우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