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트럼프정부의 이민자 추방, 흔들리는 민주주의 가치
트럼프정부의 무자비한 이민자 추방정책의 대표적 희생자 중 하나로 주목을 받았던 킬마르 아브레고 가르시아(아브레고 가르시아)가 현지시간 6월 6일 마침내 미국으로 송환되어 왔다. 지난 3월 200여명이 넘는 이민자들과 함께 인권유린으로 악명 높은 엘살바도르 감옥 세코트(CECOT, 테러범 수용센터)에 수감된지 거의 석달 만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송환된지 몇시간 만에 그는 서류미비자 불법 운송 혐의를 받아 테네시주 연방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트럼프정부가 그를 송환한 이유는 정부의 위법 행위로 인한 피해를 바로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추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즉, 법적 절차를 거친 후 다시 추방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테네시주 연방구치소에 구금되어 6월 15일 아버지의 날(Father’s Day)에도 메릴랜드에 있는 아이들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적성국국민법’ 발동해 재판 없이 추방
지난 3월 트럼프정부는 ‘적성국국민법(Alien Enemies Act)’을 발동해 베네수엘라 출신 서류미비자 수백명을 엘살바도르로 추방했다. 적성국국민법은 미국과 외국 국가 사이에 전쟁이 나거나 침략이 위협되는 경우 ‘외국인 적’으로 간주된 사람을 법원의 정식 심리없이 즉결 추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 법은 1798년 제정된 후 지금까지 전시에만 제한적으로 발동되었고, 2차대전 이후에는 단 한번도 발동된 적이 없다. 연방법원 판사가 평화 시기에 이 법을 발동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비행기를 돌려 추방 시도를 중지하라고 명령했지만 트럼프정부는 비행기를 회항시키지 않았다.
1년에 600만달러를 받고 추방된 이민자들을 테러법 구금 시설인 세코트에 수감하기로 계약한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이런… 너무 늦었군”이라며 법원 판결을 조롱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트럼프정부는 추방된 서류미비자들이 악명 높은 ‘엠에스(MS)-13’ 갱단 조직원이라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후 나온 보도들은 추방된 사람들 중에는 문신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갱단원으로 의심 받은 사람들도 있고, 망명 신청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사라진” 경우도 많다.
트럼프정부가 추방 속도를 높이기 위해 법이 보장하는 방어권과 망명 신청권을 제한하도록 ‘적성국국민법’을 발동한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지배적 의견이다. 이런 시도가 관철된다면 사법부의 개입을 최소화 하면서 행정부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되는 헌정위기가 초래된다. 또한 서류미비 이민자를 본국이 아닌 제3국으로 추방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논란도 불거졌다.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경우 2019년 이민법원이 인도적 차원에서 그를 추방하면 안된다는 ‘추방유예’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 판결에 따라 그는 노동허가증을 받고 합법적으로 체류해 왔다. 아무런 범죄경력이 없을 뿐 아니라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건설업에 종사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던 사람으로, 트럼프정부가 적성국국민법까지 발동해 추방해야 하는 ‘위험한 테러리스트’ 이미지에 들어맞지 않는다.
연방대법원 ‘불법’ 판결에도 밀어붙이기
지난 4월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추방은 ‘불법’이며, 정부는 그의 송환을 즉각 추진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추방이 ‘행정 오류’였음을 인정하면서도 트럼프정부는 그의 송환은 이미 미국 정부의 손을 떠나 엘살바도르 정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면서 법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있었다. 급기야 크리스 밴홀렌 상원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만나기 위해 엘살바도르를 직접 방문하기도 하면서 정부의 위법적인 추방 정책에 대한 비판은 더 높아져 갔다.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하면서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송환을 거부해 ‘헌법적 위기’ 논란에 불을 붙이고 전국적인 항의를 불러 일으키는 등 압박을 받자 트럼프정부는 결국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엘살바도르에서 데려왔다. 하지만 불법으로 추방된 그를 가족 품에 보내는 대신 그에게 국경을 넘은 이민자들을 불법으로 이동시켰다는 혐의를 씌워 구금해 버렸다.
팸 본디 법무장관은 송환 당일 기자회견에서 아브레고 가르시아가 지난 수년 동안 갱단의 일원으로 이민자 밀입국 조직에서 핵심 역할을 하면서 여성과 아동을 포함한 불법이민자들을 국경에서 미 전역으로 수송하는 일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가 폭력 갱단의 일원이고 심지어 마약과 무기 밀매에도 관여했다는 주장을 했지만 이런 혐의는 기소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고 구체적인 증거도 제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유죄 판결을 받아 투옥된 후 다시 추방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트럼프정부의 입장은 한마디로 정식 법적 절차를 밟아 그를 다시 추방하겠다는 것이다.
기소의 근거가 된 사건은 2022년 일어났다. 당시 아브레고 가르시아는 테네시주 고속도로 순찰대의 과속 단속에 걸렸다. 여러 동승자를 차에 태우고 가던 그는 자신들이 타주의 공사 현장 일을 마치고 메릴랜드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순찰대는 티켓 발부나 체포 없이 경고만 하고 보냈다. 별 문제없이 지나갔던 이 사건이 이제 그를 기소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단순 속도 위반 사건이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서 기소까지 이어졌는지 의문이 남는다.
지난달 ABC뉴스 보도에 의하면 여론이 악화되자 소위 신상털이에 들어갔고, 특히 4월 그의 추방이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법무부는 테네시주 과속 사건을 은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2022년 당시 아브레고 가르시아가 운전한 차량의 등록 소유자였던 호세라는 이름의 남성은 현재 중범죄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데, 연방요원이 4월 말 앨라배마주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그를 찾아 심문했다. 그는 아브레고 가르시아가 이민자 불법 수송에 가담했다고 자백한 것으로 알려진다.
가르시아의 변호인단은 몇달 간의 지연과 비밀작전 끝에 정부가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기소하기 위해 다시 데려왔다면서, 이는 정부가 계속 법원과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번 기소는 권력 남용이고 기소에 도움을 준 유일한 증인이 정부로부터 어떤 대가를 받았는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대응하고 있다.
뉴스에 의하면 이번 기소 결정에 반발해 연방검찰청 테네시 중부지검 형사부 책임자 벤 슈레이더 검사가 갑작스럽게 사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슈레이더 검사는 15년 동안 맡았던 자리를 떠나면서 SNS에 자신이 알고 있는 연방검사의 유일한 책무는 “올바른 일을, 올바른 방식으로, 올바른 이유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썼다. 슈레이더 검사가 직접 사임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보도에 의하면 익명을 요구한 한 측근은 그의 사임이 아브레고 가르시아에 대한 기소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인권이나 법 준수보다 정치적 계산 앞세워
이런 정황들에 비추어 보면 트럼프정부가 고조되고 있는 사법부와 갈등의 출구를 찾기 위해 또 동시에 추방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브레고 가르시아를 미국으로 데려와 기소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한다. 여전히 인권이나 법 준수보다 정치적 계산을 앞세운 것이다.
로스앤젤레스를 비롯 미 전역에서 도를 넘는 이민단속에 대한 항의시위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대규모 추방 계획에 반대하는 결집점이 된 아브레고 가르시아의 케이스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체류신분과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부여된 방어권과 적법 절차라는 기본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아니면 트럼프정부가 원하는대로 사라지게 될지 기로에 서 있다.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