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 칼럼

잃어버린 시간 만회 위한 속도전 절실하다

2025-06-19 13:00:08 게재

미국 트럼프행정부가 주도하는 관세정책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차례 기고를 통해서 예견했던 대로 ‘세계화의 시대’가 가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확실히, 그리고 빠르게 오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시대에 ‘시장’이 최우선이었다면 각자도생의 새로운 시대에는 ‘국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국가’는 중상주의 제국주의 시대에 이미 역사의 중심이었습니다. 자유무역과 세계화라는 물결에 밀려 잠시 ‘시장’에게 앞자리를 내줬던 ‘국가’가 이제 다시 역사의 전면에 나섰습니다.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인 스티브 미란(Stephen Miran)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미국이 새롭게 구축하고자 하는 국제경제 질서와 트럼프행정부 2기의 경제정책 방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계 무역체제 재편에 관한 사용자 지침(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미란은 달러화의 국제적 기축통화 지위라는 특수성 때문에 달러에 대한 과도한 수요가 발생하고 그 결과 미국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이 약해졌다고 분석합니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이러한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음으로써 미국의 제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높은 관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미국 경제의 인플레이션 우려는 다자간 환율 조정과 미국의 천연자원을 활용한 에너지 가격인하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각자도생의 시대' 빠르게 오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인사이트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지금의 상황이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미국이 부과하려는 관세의 수준이 너무 높고, 대상범위가 전세계 거의 모든 국가를 포함하고 있으며, 미국 국내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관세정책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행정부가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미국경제의 미래가 위험하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관세전쟁은 기대보다 오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몇달 동안 관세정책의 세부내용이 수시로 바뀌면서 여론으로부터 ‘타코(TACO, 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늘 겁먹고 물러선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아직은 협상전략 또는 정책의 탄력성을 도모하는 시기로 봐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 시사점은 미국이 앞장서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려고 하는 점입니다. 미국은 독립 이후 국제사회와 거리를 두는 대외정책이 자국의 이익 극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오랜 전통이 남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20세기 초에 고립주의를 채택한 바 있습니다. 2010년대 셰일가스 개발 덕분에 에너지 독립을 확보하게 된 미국으로서는 이제는 다른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미국 국내 산업의 보호와 삶의 질 향상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수호신이 에너지 독립과 자국 산업 보호라는 두 개의 창을 들고 자유의 여신상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새로운 세계는 미국이라는 단 하나의 강대국과 미국을 제외한 기타 나라들로 나누어질 수도 있습니다.

지난 70년 세계화의 질서 안에서 나름의 성취를 거둔 한국 경제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어려움으로 남들보다 늦게 출발한 대한민국도 이제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국제 질서에서 더 큰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장 잘했던 산업정책이라는 칼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합니다. 산업정책 2.0이라는 이름의 새 칼을 재설계하고 잘 벼려서 또다시 세계시장이라는 전쟁터로 나가야 합니다.

‘산업정책 2.0’ 위한 법·제도 만들어야

새 정부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고 산업정책 2.0을 집행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빠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시장경제 시대에 채택할 수 없었던 구조조정과 산업지원이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을 망설이지 않는 세상으로 변했습니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도 국가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해외 자원개발도 망설이지 말고, 재생에너지 설비와 전력 송전망 확충도 시급합니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역량은 충분합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판을 펼쳐주면 최상의 연기를 보여줄 능력이 있습니다. 세상은 변했지만 새로운 세상은 결코 우리에게 불리하지만은 않습니다. 지난 6개월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 속도전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HD 현대 커뮤니케이션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