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지경학을 배우는 일본기업들

2025-06-20 13:00:00 게재

중동정세 악화 등 사업환경의 각종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기업의 대응이 한층 어려워지고 있다. 파격적인 통상 및 외교정책의 변화와 함께 세계질서가 격변기를 맞이했다는 판단에서 많은 일본기업들이 지경학을 조직적으로 학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경학은 지정학적인 이익을 경제적 수단으로 실현하려는 정치・외교적 수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정치적 분쟁에서 경제적 수단의 사용에 관한 연구영역인 동시에 최근에는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한 경제적 이익의 확대, 타국에 대한 경제적 공격력 및 방어력의 강화도 초점이 되고 있다.

세계질서 격변기 맞아 일본기업 지경학 조직적으로 학습

미국이 고관세 정책, 대중 반도체 규제 등 경제적 수단에 의한 대중국 공세를 강화하는 한편 중국은 희토류의 수출통제를 강화해 일본 자동차 기업의 공장 가동중단 사태가 발생하는 등 경제력의 무기화가 일본기업에도 직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 일본기업으로서는 세계정세와 지경학적 영향을 미리 파악해서 대응하려는 자세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경학적 대응 방안 등을 강의하고 있는 일본 도쿄의 ‘지경학연구소’가 개최하는 포럼 등에는 IT기업 제조업체 종합상사 금융회사 등의 간부를 중심으로 많은 기업들이 참가하고 있다. 학자와 함께 정부 관료, 민간기업인이 함께 토론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책을 고민하는 작업도 중시되고 있다. 변하는 세계정세에 대해 기업 조직이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자율적으로 기민하게 움직이고 상황 변화에 따라 전략을 수정 및 조정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각종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속에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일본기업도 자사 공급망의 전반적인 불안요인을 점검하는 한편 각종 돌발사태를 고려한 시나리오 분석도 실시하고 있다. 시나리오 분석은 자사의 미래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불확실성을 고려한 복수의 미래상황을 상정해 자사의 취약점, 필요 준비 사항 등을 점검하는 것이다.

한편 미쓰비시전기의 경우 경제안전보장총괄실(2024년 말 11명 체제)을 중심으로 거래선 4만사, 100만 아이템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공급망 전략을 부품의 물질 성분까지 세분화하면서 글로벌한 안전·안정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기업이 어떤 돌발사태에도 공장 가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공급망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기업도 성장하고 있다.

보통 공급망의 건전성, 규제사항을 확인할 경우 2차, 3차 공급자 정보만 추적하지만 프론테오(FRONTEO, 도쿄) 시스템은 10단계에 걸친 공급선 조달선의 위험요인을 파악할 수 있고 고객기업에게 대체 거래선 후보의 제안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상과 같이 일본기업이 비즈니스만 생각하면 되는 시대가 지나고 지경학적 지식, 감각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미중 전략경쟁이 글로벌 패권의 쟁탈전으로서 장기화되면서 그 파급효과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기업도 세계정세 조망 등 지경학 인프라 확충해야

트럼프의 고관세 등 보호주의적인 정책은 미중 패권전 대응을 포함한 다면적인 측면이 있다. 미국의 조선산업 부활 전략의 경우도 바다를 지배하지 못하면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절박함도 있을 것이다.

우리기업으로서도 세계정세의 향방을 조망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각 지역의 언어와 정치, 문화에 정통한 전문성을 강화해 리스크에 대비할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 정부 학회 경제계가 각종 리스크에 관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장단기 대응을 고민하는 지경학 학습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