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경쟁 시대’로 가는 세계 안보질서

2025-06-25 13:00:08 게재

국가간 무기거래 늘고 국방비 증액 … 국제사회에 협치를 지향하는 슬기 절실해져

최근 안보현장에서 화해 협상보다는 군사적 타격이 거리낌 없이 실행되고 있다. 세계 안보질서가 강대국 경쟁 시대로 변화한 데 따른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첫번째 주요 현상은 국가간 무기거래와 세계 국방비의 증대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가 최근 추계한 바에 따르면 2000~2024년 사이 세계 무기거래량은 50% 증가해 대략 200억 추세지표값(TIV)에서 300억 추세지표값으로 늘어났다. <그림1 참조>

세계 국방비의 합계에서도 이같은 증가가 확인된다. 세계 국방비의 합계는 2000년 7424억9000만달러였으나 이후 급격히 증가해 2023년 2조3900억달러에 이르렀다. 23년 동안 세계 국방비는 3.2배에 폭증한 것이다. 이제 세계 국방비와 무기도입의 증가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추세로 굳어지고 있다. 앞의 두 표에서 보듯이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로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무기 거래량은 급감했다.

세계 국방비는 이후 10년 동안 거의 정체 상태였다. 세계 국방비는 1990년 7124억4000만달러였으며, 2000년까지 겨우 4% 정도 증가한 7424억9000만달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 세계 국방비와 국제 무기거래는 증가세로 돌아섰다. 냉전 해체 이후 각국이 국방비와 무기거래를 줄이면서 세계 평화의 희망이 높았던 ‘무지개빛’ 기간은 아쉽게도 십여년에 불과했다.

‘평화의 시기’ 십여년에 불과

같은 냉전 해체 이후의 시기이지만 2000년 이후는 1990년대와 다른 용어로 불려야 한다는 것이 안보연구가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새로 등장한 용어는 ‘강대국 경쟁 시대’로 두번째 주요 현상이다. 이 용어가 어디서 처음 시작됐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1기 집권 시절 발표된 미 외교안보 분야의 최상위 문서인 2017년 국가안보전략에서는 “20세기의 현상으로 치부되었던 강대국 간의 경쟁이 다시 시작됐다”며 “미국은 전세계에서 마주하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경쟁에 대응할 것“’”이라고 기술된 바 있다.

미국의 상대 강대국은 중국과 러시아로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반하는 세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지칭됐다. 트럼프 1기정부의 이러한 판단은 이후 조 바이든 민주당정부에서도 대체로 유지됐다.

미국은 냉전 이후 세계 안보질서가 점차 격화되자 2017년 이미 강대국 중국과 러시아를 세계 패권경쟁의 도전자로 규정한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판단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즉 미국은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대체하고 국가 주도 경제 모델의 범위를 확대하며 해당 지역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편하고자 한다. 러시아는 강대국의 지위를 회복하고 국경 근처에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한다”고 서술했다.

그렇지만 미국은 2010년만 해도 냉전 해체 이후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의 2010년 국가안보전략은 세계질서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새롭게 하는 데 집중할 것을 기본사항으로 주문했다. 이 문서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 “더욱 깊고 효과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경쟁이 아닌 협력의 대상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유럽 국가들 무기 수입량 155% 증가

세계 강대국 간 대결은 그것만으로 안보의 긴장요인이다. 강대국의 대결적 구도는 대리전이 아니어도 도처에서 무력분쟁이 벌어지게 만든다. 이에 따라 분쟁 주변지역을 중심으로 무기도입과 국방비를 획기적으로 증대하는 국가가 다수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세번째 현상이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는 2015~2019년과 2020~2024년 사이 유럽 ​​국가들의 무기 수입량이 155% 증가한 것으로 발표했다. 이 가운데 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2015~2019년 대비 무기 수입을 거의 100배(+9627%) 늘려 2020~2024년 세계 1위 무기 수입국이 됐다. 우크라이나의 국방비는 2024년 기준으로 약 648억달러다. 국민총생산(GDP)의 무려 34%를 쏟아부은 액수다. 2015년 국방비가 GDP의 3.8%였던 점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전쟁으로 막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또 다른 분쟁 당사국인 러시아와 이스라엘의 지난해 국방비 증가율은 각각 38%, 65%였다. 이와 함께 주변 국가는 물론 타 지역 국가들 다수도 대폭적인 증강에 나서고 있다.

2024년 들어 국방비가 두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한 유럽 국가는 루마니아(43%) 네덜란드(35%) 스웨덴(34%) 폴란드(31%) 독일(28%) 덴마크(20%) 등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멕시코(39%) 일본(21%)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별로 보면 유럽 17% 중동 15% 아시아·오세아니아 6.3% 남북아메리카 5.8% 아프리카 3% 증가율을 각각 나타냈다.

그에 따라 2024년 전세계 국방비는 2조7180억달러(2023년 불변가)인 것으로 스톡홀름 연구소는 집계했다. 2024년 증가율은 무려 9.4%다. 이는 1988년 이후 가장 높은 전년 대비 증가율이다. 세계의 국방비는 증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더욱 가파르게 늘고 있다.

국방비 증가에는 4차 산업혁명도 한몫

넷째는 세계가 이처럼 무기를 도입하고 국방비를 늘리는 데에는 제4차 산업혁명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과 드론, 로봇, 극초음속 미사일, 사이버전 등 새로운 무기의 등장이 군비경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신무기 도입이 늦어질 경우 각국은 국가 운명에서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염려를 하고 있다. 이에따라 각국은 군 기술 발전, 군 현대화, 방위산업 투자 등을 서두르고 있다.

세계 무기 수출국 가운데 기술 수준이 높다는 서방 국가들의 수출 비중이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세계 무기시장에서 2020~2024년 기간 미국과 프랑스 ​​러시아 중국 독일이 상위 5대 수출국으로 전체 무기 수출의 72%를 차지했다.

2015~2019년 기간과 비교하면 미국과 프랑스는 각각 21%, 11% 증가한 반면 러시아 중국 독일은 각각 64%, 5.4%, 2.6% 감소했다. 스톡홀름 연구소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2020~2024년 전체 무기 수출의 73%를 차지했으며 이는 2015~2019년의 61%보다 증가한 수치라고 밝혔다.

미국의 무기수출은 위 두 기간 사이에 21% 성장해, 세계 무기 수출 비중은 35%에서 43%로 증가했다. 무기시장에서 미국의 우월적 지위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의 강점은 첨단 무기의 공급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최근 5년 동안 사거리 250km 이상의 장거리 지상 공격 미사일 수출량의 45%를 차지하며 7개 국가에 공급했다. 또 앞으로 인도가 예정된 국가는 13개 국가이다. 특히 2024년 이후에도 미국은 군사적 가치가 높은 전투기와 공격 헬기, 장갑차량, 야포 등에서 세계 최다 수출 물량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프랑스도 전투 함정, 전투기 등에서 상당한 주문을 받아놓은 상태다.

스톡홀름 연구소의 이 자료에는 최근 방위산업에서 괄목한 성장을 거두고 있는 한국도 포함돼 있다. 한국은 2024년 이후 무기 수출 예정량에서 10대 무기 수출국에 포함됐다. 수출 예정량에는 전투기(훈련기 포함) 140대, 전투함정 4척, 지상발사 대공미사일 26기, 전차와 화력지원차량 916대, 장갑차량 626대 이상, 야포 1203문 이상 등 상당히 많은 양을 망라하고 있다.

대결의 자세 세계 곳곳에서 강화될 것

트럼프행정부는 얼마 전 동맹국들에게 GDP의 5%를 국방비로 써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서방국가들은 국방비의 상향에 대해 일단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대결의 자세는 세계 곳곳에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국제 관계에서 ‘안보 딜레마’라는 개념이 있다. 안보를 강화한다며 안보 수단을 확보하는 행위가 오히려 상대방을 자극해 안보 불안을 가중한다는 것이다. 평화로 가는 여정에 먹구름이 밀려들고 있다. 국제사회에 협치를 지향하는 슬기가 절실해지고 있다.

김성걸

동아시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