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영국 톺아보기

포퓰리스트 영국개혁당 ‘약진’, 거대정당은 ‘우왕좌왕’

2025-06-26 13:00:01 게재

창당한 지 8년에 불과한 영국개혁당이 강경한 이민정책을 내세우며 지지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정당 이념이 유사한 보수당은 물론이고 집권 노동당조차 포퓰리스트 정당의 약진에 당황하면서 대응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특히 다음달 4일에 집권 1년이 되는 노동당은 유사한 이민정책으로 선회하며 개혁당 세력 저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집권당이 정책 우클릭만으로 인내심이 바닥난 유권자들의 지지를 다시 끌어올 수는 없다.

극우 개혁당 지방선거에서 제1당 등극

“195년의 보수당 역사는 끝나고 있다. 정치지형이 급변중이다.” 지난 5월 1일 잉글랜드 전역 지방선거에서 제1정당으로 등극한 나이젤 패라지 영국개혁당 당수는 압승의 의미를 이렇게 규정했다. 개혁당은 30%를 얻어 1위를 차지했고 집권당은 20%에 그쳤다. 영국에서도 지방선거는 여당에 대한 불만 표시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항의를 넘어서 정치지형이 크게 변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개혁당은 잉글랜드 동남부 켄트 주를 비롯해 10개 주 및 시의회에서 다수당이 됐다. 4년 전 선거에서 보수당이 집권당이었던 8개 주·시의회를 개혁당이 차지했다.

보수당은 이 선거에서 16%로 자유민주당의 17%에도 미치지 못해 4위 정당으로 추락했다. 지난해 7월 4일 조기총선에서 노동당은 하원 650석의 2/3에 육박하는 411석을 얻어 14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그런데 집권 10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노동당은 패라지에게 강타당했다.

개혁당의 급부상은 당수인 나이젤 패라지가 주도했다. 61살인 그는 대학 졸업 후 런던의 금융서비스 산업에서 일하다가 1993년 몇명 안되는 사람들과 영국독립당을 창당했다. 이후 1999년 유럽의회 의원으로 선출됐고 재직중에 유럽연합탈퇴(브렉시트) 운동을 계속 전개했다.

처음에는 너무 비현실적인 구호를 들고나와 놀림감이 됐지만, 그는 2016년 6월 23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 진영이 승리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이후 2018년 브렉시트당을 창당했고 3년 후에 영국개혁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지난 5월 말을 기준으로 정당원은 22만명을 돌파해 보수당을 앞질렀고 당원 가입도 계속해서 늘어난다.

지난해 7월 4일 조기총선에서 개혁당은 급조한 지역구를 갖고도 14.3%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영국 하원에서 5석을 확보했다. 소선구제이기에 5석 확보에 그쳤지만 정당 득표율은 노동당(33.8%), 보수당(23.7%)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올 2월 초부터 정당지지도에서 집권 노동당을 1~2%p 차이로 앞질러 1위를 기록하더니 지난 5일 현재 30%로 2위 노동당에 7%p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인 보수당은 17%에 불과하다.

내일 총선이 치러진다면 정치적 아웃사이더였던 나이젤 패라지가 영국 총리가 될 수 있다는 게 여론조사의 예상이다. 하지만 그의 공약은 모순투성이다. 비필수인력의 이민 금지, 대규모 감세 속에서 복지 확대 지출 등은 매우 모순된 정책이다.

저성장과 정치불신이 극우 약진 배경

그렇다면 왜 이렇게 급진 우파 정당이 총선이 끝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제1정당으로 부상했는가. 일부 정치학자들은 경제가 오랫동안 저성장을 거듭하고 정치적 효능감에 대한 불만이 폭증해 유권자들의 인내심이 바닥났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달 초 유고브 설문조사에 따르면 20%의 유권자들만 공무원들이 시민들에 신경을 쓴다고 대답해 정치불신이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드러냈다.

기존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급증하는 실망감을 파고들어 비현실적인 만병통치약과 같은 처방을 제시하는 게 유럽에서 세력을 확대해온 극우정당들의 특징이다.

개혁당도 마찬가지다. 개혁당은 의료 인력 등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 비필수인력의 이민 금지을 약속했다. 돌봄인력이 매우 부족한데 이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술 더 떠 도버해협을 넘어오는 불법 난민들을 프랑스로 곧바로 추방하겠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국제법 위반이다.

세제와 정부 재정지출 정책은 더 현실성이 없다. 소득세 면세점을 현재 1만2750파운드에서 2만파운드로 상향조정하고 상속세 폐지를 공언했다. 소득세는 영국 조세 수입의 1/4을 차지하는 가장 큰 조세 항목이다. 이 정도로 소득세를 감면하고 상속세마저 폐기하면 합당한 재정충당 계획이 있어야 하지만 정부 지출 삭감이라는 두루뭉술한 대책만 제시했다. 여기에 모든 연금생활자에게 겨울 난방비 보조 같은 복지정책 확대도 제시했다.

패라지는 흔히 ‘영국의 트럼프’라고 불린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특집에서 영국개혁당의 부상을 집중 분석하면서 공약을 볼 때 아직도 항의정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또 그는 2인자들과 자주 갈등을 빚어왔다. 개혁당 자체가 지나치게 그의 개인적 리더십에 의존해 시스템적 운영과 거리가 멀다. 개혁당의 무서운 돌풍에 집권 노동당은 다각도로 대응해왔다.

노동당은 성장과 혁신을 공약하며 14년 보수당의 실정에 지친 유권자들을 공략해 지난해 7월 총선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복잡한 대외환경이 성장을 가로막는다. 영국은 지난해 미국과의 교역에서 779억파운드의 흑자를 기록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지난 16일 G7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관세분쟁을 타결했다. 그러나 트럼프발 경제적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영국은행은 지난해 말 올 해 경제성장률을 1.5%로 전망했다가 최근에 0.75%로 하향조정했다.

영국 교역의 절반 정도가 가는 EU와의 관계개선은 경제 재도약에 꼭 필요하다. 영국은 지난달 19일 EU와 첫 정상회담을 갖고 안보협력을 다짐했지만 통상협력은 최소한에 그쳤다. EU로 수출되는 영국 농수산물의 검역 절차 간소화만 합의됐다. 이 정도의 합의조차도 보수당과 개혁당은 브렉시트를 배신했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한편 노동당의 이민정책은 상당히 우클릭했다. 지난달 스타머 총리는 돌봄 노동자 신규 비자발급 중단을 발표했다. 또 숙련 노동자 비자 요건을 석사급으로 강화하고, 영주권·시민권 신청 자격 요건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했다.

총리는 “강력한 개혁 없이는 영국이 ‘낯선 자들의 섬’이 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국내 유권자를 의식한 발언이지만 개혁당의 반이민 정책 수사와 별반 차이가 없다.

제1야당 보수당은 이제 제3당으로 추락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 지난해 11월 케미 베이드녹 신임 당수가 취임한 후 개혁당에 질질 끌려가고 있다. 일부 보수당원들은 앞으로 선거에서 개혁당과 단일후보를 내자며 안달한다. 하지만 패를 쥔 패라지는 응할 이유가 전혀 없다.

노동당, 우클릭 아닌 정책으로 승부내야

EU와의 관계개선에 주력해온 민간단체 ‘열린 영국(Open Britain)’의 마크 키란 대표는 “집권 노동당이 우클릭해 개혁당의 정책을 모방할 것이 아니라 정책성과를 내는 것이 극우정당의 대두를 막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단체가 1000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3%가 패라지에 대응해 정부가 우클릭 중이라 여겼으며 61%가 정부의 이런 정책 전환을 매우 우려한다고 답했다.

다음 총선은 2029년 7월 초 치러진다. 아직 3년 넘게 남았다. 노동당은 경제성장률 제고를 위해 EU와의 관계개선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또 무료 건강보험의 연간 실질지출 증가율을 3% 정도 유지한다는 약속을 지켜 유권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공공 서비스 개선을 이뤄내야 한다.

포퓰리스트 정당을 따라할 게 아니라 이런 정책을 실행해 승부를 내는 게 집권당이 응당해야 할 일이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