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중국의 ‘서해공정’이 일깨우는 것

2025-06-26 13:00:01 게재

퀴즈를 풀어봅시다. 중국에는 광역행정단위로 23개 성(省)과 5개의 자치구(4개 직할시 별도)가 있다. 이 가운데 영토가 가장 넓은 곳은 어디인가? 참고로 중국 서부의 신장위구르자치구는 면적이 166만4900㎢로 전체 중국 국토의 1/6을 차지한다.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면적의 여덟 배를 훨씬 넘는다. 당연히 신장위구르자치구가 1위 아닌가.

그런데 아니란다. 달랑 3만5400㎢ 크기 섬이 전부인 남부의 하이난(海南)성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공식 웹사이트(www.ehainan.gov.cn)에 ‘육지면적 3만5400㎢, 해양면적 200만㎢로 중국 내 영토 1위’라는 주장을 내걸었다. 육지면적으로만 따지면 신장의 2%남짓에 불과하지만 내륙지역인 신장에 없는 거대한 ‘해양영토’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일개 지방정부의 ‘오버’가 아니다. 중국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해양(470만㎢)을 육지(963만㎢)와 합산해서 ‘영토’로 표기하고, 각 지방정부들에도 같은 방식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1978년 12월 덩샤오핑 집권 이후 역대 중국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따를 뿐 아니라 갈수록 강화하고 있는 정책이 있다. ‘해양대국 건설’이다. 덩이 닻을 올린 개혁·개방정책의 목표 자체가 중국을 수천년 묵은 ‘늙은 대륙국가’에서 ‘젊은 해양국가’로 탈바꿈시키는 것이었다. 덩의 후계자 장쩌민이 2001년 11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통해 본격적인 해양무역시대를 열었고, 그 뒤를 이은 후진타오는 2006년 12월 ‘해양대국화 건설’을 선포했다.

일본과 센카쿠열도(중국이름 댜오위댜오), 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와는 스프래틀리(난사)군도 및 파라셀(시사)군도를 둘러싼 분쟁수위를 높인데 이어 한국과도 서해 및 남해 이어도 해역에서 해양경계 갈등을 고조시켜 온 배경이다.

중국이 ‘해양대국 건설’에 매진하는 이유

이어 권력을 잡은 시진핑은 전임자들과 차별화하며 강력한 1인 독재체제를 구축했지만 해양대국건설 노선만큼은 더 충실하게 확장해나가고 있다. 집권 직후인 2013년 9월 “중국은 육지대국이자 해양대국”이라며 중국의 외연을 세계 전역으로 넓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전략을 발표한 데 이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의 공식자료에 ‘해양영토’를 명기(明記)하도록 한 장본인이다.

중국 지도자들이 갈수록 해양에 눈을 돌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해외무역을 위한 항해의 안전 확보에 필요할 뿐 아니라 거대한 미개발 광물자원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전체면적의 90%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남중국해는 세계 원유수송 물량의 60%와 상선통행량의 1/3을 차지하는 세계적인 해양교통 해역이다. 인도만한 면적(350만㎢)에 엄청난 원유와 천연가스를 매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맥락을 숙지해야 중국이 한국의 반발에 아랑곳없이 강행하고 있는 ‘서해공정’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중국정부기관이 2009년과 2015년 최소 두 차례에 걸쳐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서 시추공을 뚫고 자원탐사 활동을 벌인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PMZ는 두 나라가 해상 경계를 확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권리행사를 유보하기로 2001년 합의한 수역으로 일방적인 자원개발이나 어업활동이 금지돼 있다.

중국이 이런 합의를 대놓고 파기한 것도 황당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한국정부가 그런 일이 있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으면서도 ‘해양’의 중요성에 눈감다시피 해 온 아마도 세계 유일의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나라들은 자국 영토를 표기할 때 육지와 해양면적을 함께 기재하고 있지만 한국은 예외다. 정부 공식자료 어느 곳에서도 ‘해양영토’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웃 일본만 해도 ‘육지 면적 37만8000㎢’와 함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포함한 ‘영해면적 447만㎢’를 해양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언제까지 ‘해양’의 중요성 눈감을 텐가

일본이 육지면적보다 12배 이상 많은 해양영토를 갖게 된 것은 치밀한 전략과 치열한 노력의 결과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도 도쿄로부터 남쪽으로 1740㎞나 떨어져 있는 오키노토리 암초다. 일본정부는 필리핀해에 솟아 있는 이 암초의 영유권을 선언하고는 국제해양법상 섬으로 인정받기 위해 콘크리트 방파제를 쌓아 지름 50m, 높이 3m의 인공 섬을 탄생시켰다. 도쿄에서 1900㎞ 떨어진 서태평양상의 외딴 섬 미나미토리에서는 주변 해저에 1600만t의 희토류가 매장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해양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웃나라들을 언제까지 지켜보기만 할 건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치권과 각계 전문가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기 위한 정책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해양국가 건설’의 중요성과 시급성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한민국이 해양영토 확장은커녕 있는 해역조차 지키기 버겁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경제사회연구원 고문

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