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연금개혁, 사각지대 해소부터
세계 최악의 노인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 66세 이상 노년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39.8%나 된다. 2020년 기준 우리의 노인 자살률은 10만 명당 42.2명으로 수년째 최악이다. 노인 자살은 경제적 빈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8월 발표한 ‘2022년 연금통계’를 보면 노인빈곤 실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기초연금 국민연금 직역연금 등을 하나라도 받은 사람은 전체(905만명)의 90.4%인 818만명이지만 월평균 수령액은 겨우 65만원에 불과하다. 이는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2022년 노후 최소생활비 124만3000원에는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다. 그나마 25만원 미만을 받는 비율도 19.9%나 됐다. 유럽 선진국 노인들처럼 연금만으로 생활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세계 최악의 노인빈곤율은 부끄러운 자화상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낮은 데다 퇴직연금도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수령을 개시한 57만3000명 가운데 87%가 일시금으로 받았다. 이들이 수령한 평균금액은 고작 1654만원으로 ‘코끼리 비스켓’ 수준이다.
문제는 연금을 하나도 수령하지 못하는 65세 이상 노인이 86만4000명이나 된다는 점이다(2022년 연금통계). 이미 노동력을 상실한 이들은 사실상 사회의 방치 속에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내고 있을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선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3층 연금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소한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의 2층 체계는 갖췄지만 내용으로 보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준인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의 연금 사각지대가 넓다는 점이다. 2022년 기준 18~59세 인구(2971만명) 가운데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 직역연금 중 하나라도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588만명이나 된다. 이들은 장차 연금 한푼 받지 못하는 노인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
여기에 최근 고용 형태 변화에 따라 빠르게 증가하는 ‘1인 비임금근로자’가 대부분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2022년 기준 특수형태 근로종사자(특고),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 고용계약 없이 일하는 사람이 847만명을 넘어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공약했다. 국회도 4월 8일 발족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관련 논의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낙관은 금물이다. 아쉽게도 경기침체로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협치의 첫 성과는 연금 사각지대 해소 법안이기를
이런 상황일수록 노사정 대타협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타협을 못할 리도 없다. 가령 노동계는 노후생활 안정을 위해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정부가 영세 중소기업의 국민연금 보험료와 퇴직연금 부담금을 일부 지원하기로 한다면 기업도 연금 의무화에 무조건 반대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기업의 현실적인 부담을 고려해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인 의무화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여당도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 정치의 구조상 야당은 언제나 여당이 성공하는 ‘꼴’을 보기 싫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통령은 여야 협치를 강조하지 않았는가. 협치의 첫 과실이 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담은 법안의 국회 통과이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