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찬 칼럼
역사가 평가하는 지도자
이달 초 한국의 새로운 리더가 된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의 첫발을 호쾌하게 내딛고 있다. 무엇보다도 스스럼없이 국민에게 접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 대통령은 강점도 약점도 거침이 없다. 그러나 개인적 스타일로 대통령을 평가할 수는 없다.
두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그들의 정책에 기여하기도 했던 사람으로서 새 대통령에게 꼭 조언하고 싶은 게 한가지 있다. 역사의 평가를 염두에 두고 대통령직을 수행해달라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시류에 따라가는 사람은 국가에 필요한 리더가 아니다.
임기 중 좋은 평가를 받는 리더도 있고, 역사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는 리더도 있다. 역사에서 더 평가받는 사람은 방향이 분명한 사람이다. 대통령은 회사 사장이 아니고 그룹 회장이다. 경영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닌 비전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유능한 대통령은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이다. 그 대통령 밑에서 일어난 일의 공과는 모두 그 대통령의 공과다.
대통령은 관계에 의해서 평가받는 자리가 아니고 판단과 결정에 의해서 평가받는 자리다. 지금 평판이 좋아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듣는 것보다 그 사람의 정책으로 인해 일 잘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중요하다.
판단과 결정에 의해 평가받는 자리
정치인에게는 개인적 덕목보다 그가 실행한 일의 결과와 영향이 더 중요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수상은 재임 중 훌륭한 리더로 칭송 받았다. 그러나 그녀가 떠난 뒤 독일과 유럽은 그녀가 실행했던 주요 정책의 부정적 결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패한 세 가지 정책을 들자면 감상적 난민정책, 탈원전과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 독일 군비축소와 러시아에 대한 유화정책 등이다.
그녀의 관대한 난민정책은 독일정치에서 이민에 반대하는 극우파 정당이 득세하는 토양을 만들었다.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는 도덕감에 매달려 그 결과를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탈원전 정책은 전기료 인상으로 서민에게는 고통을 기업에게는 경쟁력 약화를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탈원전과 병행된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은 지정학적으로 후일 큰 부담이 되었다.
러시아에 대한 유화정책은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가져왔다.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에 제동을 걸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행태와 그 리더인 블라디미르 푸틴의 사고방식이 드러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경고음을 무시하고 유화정책을 계속한 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독일은 최근에야 군비 증강을 다시 시작했다. 메르켈 수상의 수석경제자문관이었던 한스 헨드릭 뢸러는 필자와 친한 대학원 후배다. 그는 지나고 보니 당시 단기적 관점에서 타당해보였던 정책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잘못된 정책이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은 ‘물태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우유부단해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북방정책 만큼은 높게 평가받고 있다. 북방정책은 냉전시기 서방국가 일변도의 외교를 해오던 한국이 공산주의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는 정책이었다. 동구권 국가들과 소련 중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이를 토대로 남북관계도 진전시켰다. 노 대통령의 정책자문그룹에 유능한 전략가들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고비를 넘고 성장해가면서 그의 경제관도 진화했다. 외환위기 직후 대통령이 된 김 대통령은 공공 노동 금융 기업의 4대부문 개혁을 추진했다. 당시 추진했던 정책 중 산업구조조정을 위한 빅딜정책이 있었다. 재벌간 사업교환을 통해 핵심역량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었는데 당시 대부분 경제학자들이 시장에서 경쟁을 줄이고 독점을 늘리는 데 대해 우려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 되어 상위 몇 개만 살아남는 글로벌시장에서 한국의 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지게 된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김 대통령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대한 안목을 갖게 된 데는 유능한 글로벌 기업인이나 금융인의 자문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치인 아닌, 대통령으로서 성공해야
이재명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통령으로서 성공해야 한다. 그러려면 방향을 분명히 해야한다. 양대정당 체제하에서는 선거 때마다 중원공략이 먹히는 전략이다. 그러나 한 나라가 앞으로 가는 데는 시대에 따라 좌든 우든 한 방향이 옳을 뿐 양쪽이 다 옳을 수는 없다. 중도는 역사를 전진시킬 수 없다. 다른 정당의 노선을 흡수해서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는 실용적 노선에는 한계가 있다.
정치적 화합을 위해 최소한의 결단만 내리는 것은 결국 실패한 대통령으로 가는 길이다. 국익에 입각한 체계적 정책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먹고사니즘은 비전일 수 없다.
이 대통령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조만간 명확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