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 유럽 톺아보기

트럼프주의 강풍과 범 대서양 ‘반동 인터내셔널’

2025-07-10 13:00:00 게재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에서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올해 트럼프주의의 정치적 강풍이 대서양을 넘어 유럽에 휘몰아치는 중이다. 2024년 이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 슬로건을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이어받아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MEGA, Make Europe Great Again)”를 외쳤다. 왜냐하면 헝가리는 모든 회원국이 6개월씩 돌아가면서 맡는 유럽연합 순회 회장국 역할을 작년 하반기에 담당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한 뒤 바쁘게 만들어낸 충격적 정책들은 가히 혁명적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면서 국제뉴스를 타고 유럽을 강타하고 있다. 서구의 최강대국이자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트럼프의 집권은 극단적 정치 세력이나 담론을 일상화하면서 변화의 분위기를 낳았다.

트럼프주의 강풍, 유럽에 휘몰아쳐

지난 반년 동안 트럼프가 보여준 행보는 온건 보수가 아니라 기존 자유민주주의 질서마저 뒤흔드는 극단적이고 민족주의적 보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유럽 중도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의 트럼프 세력과 유럽의 극우를 싸잡아 ‘반동 인터내셔널’(Reactionary International)이 형성되었다고 분석했을 정도다. 미국의 트럼프 세력과 유럽의 극우 사이에 연결은 다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선 미국은 정치적으로 유럽에 직접 개입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2월 뮌헨 안보회의에서 미국의 J.D. 밴스 부통령은 유럽의 문제는 러시아나 중국의 외부적 위협이 아니라 내부적인 민주주의의 부정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부정이란 헌정질서를 지키려고 극우 세력의 담론과 활동을 제약하는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한동안 트럼프정부에서 활동한 일론 머스크는 지난 2월 독일 총선에서 노골적으로 극우세력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지지했다. 지난 5월 폴란드 대선에서도 미국 크리스티 노엄 국토안보부 장관은 폴란드를 방문해 민족보수진영의 카롤 나브로츠키 후보를 지지해 당선을 도왔다.

미국과 유럽의 극우 연대는 조직적 연결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은 유럽의 극우 인사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보수진영의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도 유럽의 다수 정치인이 참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0년대에는 영국 극우의 나이젤 파라지 정도가 CPAC에 참여했으나 2025년에는 이탈리아의 조지아 멜로니 총리,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토 피초 총리가 영상 메시지를 보내고, 영국의 전 총리 리즈 트러스나 폴란드의 전 총리 마테우스 모라비에츠키 등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 19세기 사회주의나 20세기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처럼 21세기 극우 또는 반동 인터내셔널이 활동하는 셈이다.

이와 같은 직접적 정치 개입이나 조직적 연계는 결국 유사한 이데올로기적 확산으로 전개된다. 일명 ‘메타정치’, 즉 시민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고 그로써 집권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이고 문화적인 행동에서의 협력이다. 반(反)세계화 담론이 대표적인 사례다. 트럼프와 유럽 극우는 모두 세계화가 상징하는 자유무역이나 이민의 확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반대한다. 상품이나 노동이 자유롭게 이동해서는 곤란하며 국내의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야 하고 외국인은 국경 밖으로 내쫓거나 안으로 들어오기 어렵게 하자는 주장이다.

상품이나 인간뿐 아니라 아이디어의 세계적 확산도 극우 반동의 메타정치는 반대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치적 옳음(PC)’, 페미니즘, 워키즘(Wokism) 같은 진보사상이야말로 사회를 퇴보시킨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환경주의와 녹색정치도 국제적 엘리트와 학자들의 음모로 치부하면서 비판한다.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이나 CPAC, 유럽의 다양한 극우 정치 세력과 싱크탱크는 촘촘한 그물을 형성하며 자신들의 메타정치를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트럼프의 집권은 유럽의 극우 세력에 막강한 정치적·도덕적 정통성을 부여해 주는 측면이 있다.

유럽 극우세력에 정치적 정통성 부여

과연 트럼프의 정치 열풍이 대서양을 넘어 유럽까지 변화를 초래할 것인가. 신자유주의는 미국과 유럽의 협력이 두 대륙을 넘어 세계적 변화를 이끌고 온 성공사례다. 1979년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 총리의 집권, 그리고 이듬해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은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확산의 출발점이 되었다. 대처와 레이건은 21세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자유주의 메타정치의 창시자들이며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미국, 유럽을 넘어 개발도상국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의 정치적 토양이 크게 다르다 보니 협력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성공적인 동기화가 이뤄지지 못한 정치 세력도 있다. 20세기 집단주의적 전통이 강한 유럽은 사회주의가 거의 모든 국가에서 굳건한 정치 세력으로 뿌리를 내렸으나 미국은 개인주의적 정치문화 때문인지 사회주의가 정착하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오히려 사회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금기시되면서 ‘민주적 사회주의’ 등으로 포장해야만 간신히 정치의 장에 깃발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다. 21세기 대서양 양안의 극단적이고 보수적인 민족주의가 신자유주의처럼 동반 성공할지, 아니면 사회주의처럼 차이를 드러낼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사실은 양안에서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각각의 전통과 토양을 반영해 상당한 차이점을 드러낼 것이라는 점이다.

현 시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미국의 트럼프주의와 유럽의 극우 세력이 안고 있는 미묘한 대립각이다. 국내정치적 쟁점에서 미국과 유럽의 민족 보수주의는 매우 유사하지만 세계 경제를 놓고 벌이는 경쟁 관계에서는 대립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행정부가 벌이는 무역전쟁에서 유럽은 중국 및 동아시아와 함께 표적이 되는 적대세력이다. 유럽과 미국의 극우 모임에서 이런 주제는 침묵의 대상이다.

트럼프행정부는 또 국내 경제 정책에서 복지의 강화보다는 부자 감세 등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색채가 강하다. 최근 의회를 통과한 예산 관련법(Big Beautiful Bill)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유럽의 극우는 오히려 좌파나 사회주의처럼 강한 복지 정책을 선호한다. 그리고 부자 감세보다는 증세 정책으로 기우는 편이다.

지정학적으로도 미국과 유럽의 극우는 종종 충돌한다. 동유럽의 폴란드나 발트 3국은 러시아의 직접적 위협에 노출된 국가들인데, 트럼프의 친 러시아적 외교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특히 폴란드의 법과 정의당(PiS)은 트럼프의 정치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친 러시아적 외교 행보에 당황함을 감추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유럽의 극우 세력 역사를 파보면 그 정체성의 핵심에는 반미주의가 있다는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 극우는 어디서나 현실에 대한 불만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함으로써 극복하려 한다. 유럽의 극우도 미국, 소련(러시아)이나 중국에 상처받은 자존심을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영광을 되살려 회복하려고 태동했다. 미국 트럼프주의와 협력하면서도 포기하기 어려운 정신적 뿌리다.

2027년 프랑스 대선 극우집권 가능성

향후 2030년까지 중기적으로 볼 때 범 대서양 극우 연대의 모멘텀은 2027년 프랑스 대선이다.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나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당분간 중도 정권으로 유지될 예정이지만, 프랑스는 2027년 마크롱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서 치러질 대선에서 극우의 집권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정치적으로 유럽연합에서 가장 강한 국가라는 점에서 극우의 집권은 유럽과 미국의 극우 연대를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

숭실대 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