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견 칼럼
트럼프 독주 언제까지 가능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단연 세계 최대 ‘뉴스 메이커’다. 전세계가 눈을 뜨면 트럼프 대통령이 밤 사이에 무슨 말을 했는가부터 챙긴다. 그의 한마디에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들썩거린다. 아침 말 다르고 저녁 말 다르고, 인용하는 숫자는 오류투성이고, 감정이 죽 끓듯 수시로 바뀌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그가 툭 던진 ‘한마디’를 놓고 좌불안석이다.
아무리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맞수가 없는 절대 기축국이라고는 하나, 역대 미대통령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처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긴장케 한 적은 없다.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황제놀음’이다.
트럼프는 특히 ‘동맹들’에게 가혹하다. 미국의 단물을 빨아먹어온 기생충 같은 존재들이 다름아닌 동맹들이라고 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나 아시아의 한국, 일본을 보는 시각이 그렇다. “미국 때문에 잘 살게 됐으니 이제는 토해내라”는 식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안보 비상이 걸린 유럽연합에 대해 트럼프는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로 높이지 않으면 나토에서 탈퇴하겠다고 협박해 이를 관철시켰다.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압박을 가했다. 국가별 관세율 통보를 한국과 일본, 기타 12개 신흥국에 가장 먼저 한 것만 봐도 그렇다. 한국과 일본을 만만하게 보고 길들이겠다는 식이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총리가 직접 만나 미국측 요구의 대폭 수용 방침을 밝혔음에도 일본의 관세율을 도리어 1%p 높여 25%로 통보했다. 한국에 대해서도 종전과 같은 25%를 매겼다.
동맹에 더 가혹한 트럼프 관세
트럼프정부 관계자들은 특히 우리나라에 대해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가능성을 흘리며 노골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 마당에 우리로선 펄쩍 뛰고 환장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가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대해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의 대응으로 보인다. 조속한 정상회담을 희망하는 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시장 대폭개방과 주한미군 주둔비 대폭 증액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속내다.
알면서도 “네 마음대로 하라”고 맞받을 수 없는 게 우리 처지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폭발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처참하게 당하고 그후 굴욕적 광물협정을 체결하며 백기항복을 하는 모습을 전세계가 생생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상대방의 약점을 철저히 밟는 그런 인간형이다. 미국 관세가 확정되기 전에 반드시 이달내 한미정상회담을 해야 하면서도, 성사가 되더라도 정상회담에 대한 우려와 불안이 가시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과연 트럼프 독주는 언제까지 가능할까. “더러워도 4년만 참자”. 최근 유럽연합이 내린 결론이다. 트럼프 요구대로 오는 2035년까지 GDP의 5%로 늘리기로 하면서도2029년 중간 점검을 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3선 도전을 할 수 없다. 따라서 2029년 임기가 끝이다. 트럼프가 권좌에서 사라지면 재검토를 하겠다는 의미다. 또한 방위비에 우크라이나 지원비도 포함시키기로 ‘물타기’했다. 트럼프 기분만 맞춰주고 최대한 국방비 증액을 막으려는 것이다.
빠르면 내년 11월 트럼프의 힘이 빠질 수도 있다. 전기차 보조금 철폐를 놓고 트럼프와 대충돌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신당을 만들어 내년 11월 중간선거 때 트럼프의 공화당을 소수정당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머스크 호언대로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나름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머스크가 트럼프 지지자 중 일부만 이탈시킬 수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그림도 아니다.
트럼프의 ‘집권 반년 성적표’는 이미 나왔다. 주요 6개국 통화(유로화·엔화 등)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올해 상반기 10.8% 급락했다. 이는 브레턴우즈 체제하의 금본위제가 무너지고 변동환율제가 도입됐던 1973년 상반기(-14.8%) 이후 최대 하락률이다. '블룸버그'는 트럼프의 정책 변동성 등을 근거로 하반기에도 달러 약세가 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트럼프가 강행처리한 감세법으로 2025~2034년에 미국의 재정적자가 3조3000억달러(약 4500조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의 재정적자 급증은 달러화 가치 추가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기축통화 위기’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
‘기축통화 위기’ 초래할 개연성 높아
트럼프는 이미 폭압적 관세정책으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계를 붕괴시켰다. 힘만이 지배하는 약육강식 시대의 도래다. 여기에다가 2차대전 후 세계 경제질서의 근간이던 달러 기축통화 체제마저 붕괴된다면 세계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극한 혼돈상태에 빠져들 것이다.
한국은 FTA체제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였다. 급속한 경쟁력 상실로 고심하는 한국경제가 직면한 또하나의 극한 시련이자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