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폭주하는 트럼프 반이민정책

2025-07-15 13:00:01 게재

폭주하고 있는 트럼프정부의 대규모 추방정책 화살이 이제는 미국 시민권자를 향하고 있다. 6월 11일 연방법무부는 산하 부서에 내린 지침에서 외국 출생 귀화시민의 시민권 박탈(denaturalization) 절차를 최우선 과제로 추구하라고 요구했다.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국가 안보에 잠재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개인”, “고문, 전쟁 범죄 또는 기타 인권 침해에 연루된 개인”을 포함하는 시민권 박탈의 범주를 설정해 관련 사건을 우선 순위로 조사해 최대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2023년 기준 귀화 미국인은 약 25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미국 시민권자도 겨누는 추방정책

트럼프정부의 이민자 단속은 공공 안전과 이익을 위해 중범죄를 저지른 이민자들을 대규모 추방하겠다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곧 범죄 기록이 없는 이민자들, 학생비자와 취업비자 등 합법 체류자뿐 아니라 영주권자들로 확대되었다. 최근에 벌어지는 상황들은 이제 미국 시민권자들조차 트럼프정부가 휘두르는 칼날에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헌법권리센터(Center for Constitutional Rights)의 바허 아즈미 변호사는 “특히 국가 안보에 ‘잠재적 위험’이 되는 개인에 대한 시민권 박탈이라는 조항은 트럼프정부가 테러를 지지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반대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악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는 혐의로 컬럼비아대 학생 마흐무드 칼릴을 비롯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영주권자 학생들을 추방하려는 것에 비춰볼 때 이런 우려가 기우만은 아니다.

트럼프정부 이전에도 귀화시민에 대한 시민권 박탈은 있었다. 특히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시민권 박탈과 추방이라는 정치적 보복 행위는 1950년 대 초 매카시즘 광풍이 불때 빈번히 벌어졌다. 이제 그 비슷한 양상이 미국에서 다시 일어날 조짐이 보인다. 그 단적인 예가 일론 머스크와 조란 맘다니다. 지난 대선 때 트럼프 캠프에 막대한 기부를 해 트럼프 당선의 일등공신이 된 머스크가 최근 트럼프정부의 핵심 정책 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트럼프와 머스크의 정치적 밀회는 파탄났다.

그러자 트럼프는 남아프리카 출신 귀화 시민인 머스크의 시민권 박탈을 검토해 보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조란 맘다니는 최근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경선에서 진보적인 공약을 내세워 승리했다. 인도계 무슬림인 그는 우간다에서 태어나 7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 2018년 시민권을 얻었다.

트럼프정부의 이민자 추방정책을 꾸준히 비판해 온 맘다니가 뉴욕시장이 될 가능성이 커지자 시민권 취소를 비롯 그에 대한 이슬람 혐오와 인종차별 공격이 거세어지고 있다. 맘다니가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다음날 공화당 청년회 뉴욕지부는 “공산당통제법(The Communist Control Act)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맘다니의 시민권을 취소해 그를 즉각 추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하원의원 앤디 오글스도 맘다니가 뉴욕시를 파괴할 ‘반유대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라면서 그의 시민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에 가세했다. 이에 답하듯 트럼프도 이달 1일 “많은 사람들이 맘다니가 불법적으로 미국에 왔다고 말하고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다 살펴보겠다”면서 맘다니의 시민권 박탈을 추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는 맘다니가 불법 체류하고 있다는 근거없는 주장을 계속 펴고 있다. 전에도 그는 오바마에 대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거짓 뉴스를 퍼뜨린 적이 있다.

뉴욕시장 가능성 높은 맘다니에 대한 공격

법조계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적(政敵)을 포함해 미국 시민을 상대로 시민권 취소를 추구하려는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컬럼비아대 로스쿨 전직 교수이자 법학자인 캐더린 프랑크는 “서류미비자 추방부터 시작해 영주권, 취업 비자 등을 소지한 사람들로 나아가고, 그 다음에는 미국 시민이 된 사람들의 시민권 박탈을 위해 이민법의 경계를 확장하는 것이 바로 그동안 내가 우려해 온 바”라고 말했다.

귀화시민에 대한 시민권 박탈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맘다니나 머스크에 대한 시민권 박탈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네바다대 법학 교수인 마이클 케이건은 시민권 박탈은 귀화 신청 과정에서 중대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허위 진술을 했다는 것을 정부가 소송에서 입증하는 경우에만 한정된다면서 두 사람을 추방하겠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위협하기 위한 무책임한 발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을 무시한 이같은 트럼프의 발언은 브레이크 없이 선을 넘고 있다. 현지 시간 7월 12일 트럼프는 자신이 만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로지 오도넬이 우리의 위대한 국가 이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의 시민권 박탈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썼다. 유명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로지 오도넬은 귀화 시민이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났다. 오래전부터 트럼프에 대한 비판을 숨기지 않아온 그녀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자 아일랜드로 이주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계속 트럼프의 제프리 엡스틴 성범죄 연루설,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텍사스 홍수 대응 등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오도넬을 향해 트럼프는 “그는 인류에 대한 위협”이라면서 시민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미국 출생 시민권자에 대한 시민권 박탈은 명백한 위헌이다.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의하면 대통령은 미국 태생 시민의 시민권을 박탈할 권한이 없다. 연방대법원은 1967년 ‘아프로임 대 러스크’ 판결에서 수정헌법 제14조의 이런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주권은 정부가 아닌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정부가 시민권을 박탈함으로써 국민과의 관계를 단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지금까지 거의 60년 동안 귀화시민에 대한 시민권 박탈은 150건 미만에 그치고 있다. 대부분 나치 전력을 숨긴 전범이나 위조 서류 등 거짓으로 시민권을 획득한 사람들이다. 그만큼 시민권 박탈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이주정책연구소(Migration Policy Institute)의 줄리아 겔라트도 “미국 시민은 자발적으로 시민권을 포기할 수 있으며, 연방법원이 사기나 허위 진술 또는 기타 주요 원인이 입증된 경우 귀화 시민의 시민권을 박탈할 수는 있지만, 미국 태생 시민의 시민권을 박탈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트럼프의 협박이 20년 가까이 된 앙숙 오도넬 개인에 국한된 문제이거나, 소셜미디어에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분노를 쏟아낸 해프닝이 아니라는 지적 또한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헨은 진보언론 ‘마이더스터치’ 기고를 통해 트럼프의 발언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그 누구보다 가까이 트럼프 옆에서 직접 경험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트럼프의 발언은 그가 헌법을 얼마나 밀어붙일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리트머스 테스트라는 주장이다.

대중의 반응을 떠보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허약한 틈을 찾아 전체 기반이 와해될 때까지 집중 공략하려는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수정헌법 14조에 명시된 ‘출생시민권’을 행정명령으로 제한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미국인들 사이에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킨 예를 보면 그의 주장이 아주 근거 없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 법체계 근간 위협하는 위험한 발상

당장 트럼프 발언의 진의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스티븐 예일-로어 코넬법대 교수의 말처럼 “시민권은 대통령이 내리는 선물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근본적인 권리”이며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추방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미국 법체계의 근간을 위협하는 위험한 발상”인 것은 분명하다.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