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스테이블코인, 혁신의 촉매제 삼자
5년 전 ‘구글의 종말(Life after Google)’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책 말미에 소개된 분산원장 기반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은 탈중앙화 자동화 투명성을 바탕으로 차세대 디지털 경제의 기반기술이 될 잠재력을 지닌 것이었다. 다만 이 시스템에서 생성된 코인(coin)이나 토큰(token)들은 가격 변동성이 극심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때문에 이 혁신적 생태계는 당시에는 아직 실험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 가치 불안정 문제를 해결했다. 테더(USDT)와 USD코인(USDC) 등이 암호자산의 결제 및 담보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와 토큰화된 자산시장이 빠르게 확장돼 암호자산 생태계가 현실 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시급한 과제
지난주 미국에서는 지니어스법(GENIUS Act) 등 3대 디지털자산 관련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이렇게 스테이블코인이 법적 기반을 갖추고 나면 그 확산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이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제도 공백이 계속될 경우 국제 디지털 결제·무역시스템에서 원화가 외면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발의돼 발행 주체의 자본 요건, 준비금 보유 방식, 금융당국 인가 조건 등 세부 사항을 논의 중이다.
법적으로 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으로 규정할지, 전자화폐나 결제수단으로 분류할지에 따라 적용 법체계가 달라진다. 전자금융거래법, 특금법, 외환거래법 등 기존 법률과의 정합성 점검도 필수적이다. 특히 해외송금이나 디파이 거래를 고려하면 외환규제와의 충돌 가능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쟁점이다.
한국은행의 우려도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 한국은행은 민간에서 발행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무분별하게 확산될 경우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약화시키고 금융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도입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영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금융안정성과 혁신성을 균형 있게 달성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발행 기관에 대한 엄격한 관리 감독 체계를 구축하고, 준비금의 투명한 운용과 실시간 검증이 가능한 기술적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코인 발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스테이블 코인은 국가간 지급의 시간과 비용을 감축하면서 기존 금융시장이 제공하지 못한 혁신적인 서비스를 가능하게 한다. 증권형 토큰 발행(STO) 등 자산의 디지털화가 확산되는 지금 스테이블코인은 전통 자본시장과 디지털 생태계를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자본시장법 및 외국환거래법 체계의 개선 등 제도적 혁신 병행해야
하지만 한국의 디지털 자산시장은 아직 규모나 깊이 면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유럽과 일본의 사례를 보면 스테이블코인 제도만으로는 시장 활성화가 어렵다.
이는 원화 기반 디지털 자산시장 자체를 육성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토큰증권(STO) 발행 인프라 확충, 커스터디 시장 활성화 등 민간의 참여와 기술 생태계를 동시에 키워나가야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기존의 금융 및 외환 관련 법규 전반을 재검토해 디지털화된 자산의 발행과 거래 활성화를 가로막는 기존 자본시장법 및 외국환거래법 체계의 개선 등 제도적 혁신을 병행해야만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