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한미동맹과 나당전쟁

2025-08-05 13:00:00 게재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되면서 한숨 돌린 이재명 대통령이 여름휴가차 경남 진해 저도로 갔다. 취임 후 두달 만이다. 이 대통령은 휴가지에서 곧 다가올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재명-트럼프 상견례는 여느 대통령과는 달리 숨 막히는 외교 ‘담판’의 연속성 속에 있다. 말이 협상이지 트럼프의 스타일상 또 다른 요구를 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국방비나 주한미군 분담금 증액 등 ‘안보 청구서’를 들이밀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무엇보다 ‘주한미군 유연화’ 등 우리의 안보와 관련된 민감한 주제들도 ‘동맹의 현대화’란 그럴 듯한 말로 공식의제로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불분명한 관세합의, 의회 비준도 없어

관세 15%. 대미투자 3500억달러+α. 이번 관세협상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다양하다. 유럽연합(EU)이나 일본과 관세율이 같다는 점에서 “선방했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이 대통령 스스로는 “이빨이 흔들릴 정도로 노심초사하며 비상하게 대응했다”고 그동안의 고충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열린 고위공직자 워크숍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자평했다.

여야 정치권도 온도차는 있지만 “성공적인 협상”이라거나 “적절한 수준”이라고 했다. 어차피 미국에 맞짱뜨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며 긍정적인 반응이다. 내심 ‘비슷하게 얻어 맞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자조도 깔려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세부사항이 불분명하고 한미간 해석에 따라 상당한 격차를 가져올 지뢰들이 산재해 있다. 우선, 한미 FTA협정이 일방적으로 파기된 데 따른 아무런 설명이 없다. 미국 제품에 대한 한국 관세는 여전히 제로인데 미국 관세는 왜 15%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이번 관세협상이 국가간 협정인지 정치적 합의, 또는 그냥 MOU인지도 오리무중이다.

관세협상을 맺은 어느 나라도 자국 의회에서 비준절차를 거치는 곳이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대미 투자액수나 방식, 심지어 돈의 통제나 소유권조차 누구에게 있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트럼프의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지거나 임기가 끝나면 유야무야될 수도 있다. 국내외 법적효력과 강제성이 어디까지인지 불분명하다는 의미다.

여기다 정부 재정이나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다. 우선 수백조원의 재원을 조달할 방안도 마땅치 않아 보인다. 우리가 약속한 3500억달러(486조원)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1조8700억달러의 18.7%다. 한해 정부 재정은 지출기준 657조원이고 국가채무는 1196조원이다. 여기다 연금충당 부채를 더한 국가부채는 2585조원이다. 미국 경제 살리다 우리 경제가 거덜날 수도 있다. 이미 지난 시기 미국에 공장을 지었던 기업들이 고임금 저생산성 등으로 고전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우리는 과거 나라 곳간 비는 줄 모르고 있다가 IMF에게 상당 기간 ‘경제주권’을 뺏기고 전 국민이 어려움을 겪었다. 정치적 단기 성과를 위해 국민들에게 미래의 부담을 떠 넘겨서는 곤란하다.

그래도 이번 한미협상에서 돋보이는 건 ‘팀플레이’다. 출범한 지 얼마 안된 정부와 경제계가 긴밀히 협력해 파국은 막았다. 이 대통령은 “오리가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물밑에서 생난리 치는 것처럼 (노력을) 했다”고 했다. 정부는 ‘모욕감’을 참아가며 미국으로 스코틀랜드로 동분서주했다. 삼성 한화 현대차 등 재계 회장들도 발 벗고 나섰다.

혼돈의 국제질서, 답은 결국 내부에

국제질서는 자국이익 우선주의로 재편되고 있다. 동맹도 적도 변화무쌍하다. 냉정한 자세로 실사구시하지 않으면 뒤통수 맞기 좋다. 나당연합에서 나당전쟁으로 전환된 삼국통일 시기가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삼국통일에 대한 평가는 여러가지이지만 거대 제국 당의 지배를 물리친 지도자의 용기와 지략이 절실하다. 당시 ‘전시작전권’이던 나당연합군의 군권이 당나라에 있었다는 것도 역사적 데자뷔다.

거란의 위협을 지혜로운 외교로 막고 오히려 강동6주를 되찾은 서 희 같은 재상(장관)도 필요하다. 사태가 파국으로 갈 경우 맞서 싸울 국력을 키울 현대판 강감찬도 있어야 한다. 민초들은 국난의 시기마다 돈과 힘과 지혜를 바쳐 나라를 구했다.

동맹을 파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권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이 대통령은 “나라의 국력을 키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결국 답은 내부에 있다.

차염진 정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