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에너지정책 기능 조정의 과제
과거 경제성장 과정에서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공급은 정책의 최우선 과제였다. 전력수급계획은 1962년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연동해 왔다. 1973년과 1978년 석유파동은 에너지 없는 나라의 운명과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고 에너지 수급과 가격안정의 틀이 단단하게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의 정책 기조는 오늘날까지도 에너지정책의 주요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에너지정책의 기능을 조정하기 위한 정부조직 개편 논의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환경부와 산업부의 기후와 에너지정책 기능을 통합해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거나 산업부의 에너지정책기능을 환경부에 통합시키는 두 가지의 대안이 검토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수급안정 조화롭게 다루기 쉽지 않아
과거에도 에너지정책 기능 조정을 위한 정부조직 개편이 있었다. 1차 석유 파동 이후 심각해진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 1978년 동력자원부가 상공부에서 분리되어 신설됐다. 1993년에는 산업정책을 뒷받침하는 에너지정책을 위해 동력자원부가 분리된 지 15년 만에 상공부에 통합됐다. 과거 정부 조직개편은 경제성장을 위해 충분하고 효율적인 에너지 공급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지금의 개편논의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대응에 방점이 찍혀 있다.
기후와 에너지정책 기능이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되는 경우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상호충돌의 여지가 많아 조화롭게 다루기가 쉽지 않다. 에너지정책은 수급안정이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려 있다. 전력수급계획의 목적은 전력수급안정,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의 설립목적은 전력 및 가스의 수급안정이라고 법률에 명시되어 있다.
기후정책은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탄소중립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35%이상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법률에 명시되어 있다. 깨끗하면서 값싸게 대량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는 아직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하나의 정책을 앞세우면 다른 하나는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다.
그간 우리나라의 기후나 에너지정책은 에너지수급상황이나 정치적 여건에 따라 급격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 수급상황이 어려워지면 원전, 석탄 발전소 공급을 늘렸으며 반대로 수급이 안정되면 재생에너지 확대 등 환경과 안전문제가 부각되기를 반복했다. 유럽의 경우에도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자 수급안정이 우선순위로 떠오르고 탄소중립은 후순위로 밀린 바 있다. 여기에 더해 2017년 이후 정치논리에 따라 탈원전, 탈원전폐기와 같이 급격한 정책변화에 휘말리기도 했었다.
조화와 균형 이루는 것이 에너지정책이 풀어가야 할 가장 큰 숙제
2015년 이후 국내 에너지는 수급과 가격 모든 측면에서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고 상대적으로 기후나 환경 이슈가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러나 수급안정이 또 다시 주목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 확대, 데이터센터 구축 그리고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필요하고 국제적으로 에너지 무기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이 가중되고 있어 에너지수급문제는 언제든 급박한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에너지정책은 수급안정, 온실가스 감축 이외에도 산업경쟁력, 수용성, 안전성 확보 등 복합적 목표가 고차원 방정식처럼 얽혀 있다. 정책의 목표를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에너지정책이 풀어가야 할 가장 큰 숙제일 것이다. 논의되고 있는 에너지정책 기능 조정 정부조직 개편이 이러한 숙제를 풀어 가는 데 적합하거나 보완할 부분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