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서울 지하거주 가구가 늘었다
2010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반지하주택 공급을 불허하겠다”고 했다. 2022년 에는 “10~20년 유예기간을 주고 순차적으로 주거용 지하·반지하를 없애 나가겠다”고 했다. 관악구 지하에서 초등학생을 포함한 3명이 사망한 참사 현장을 방문한 직후였다.
그런데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는 그의 말과 다르다. 서울 지하거주 가구가 2024년 24만5194가구로 2020년에 비해 4만4345가구나 늘었다. 2005년 35만5427가구, 2010년 30만8660가구, 2015년 22만8467가구, 2020년 20만849가구로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지하거주 가구가 처음으로 증가세로 바뀐 것이다.
서울시 반지하주택 공급 불허 정책 실효 못거둬
서울시는 ‘20% 표본조사인 2020년과 전수조사인 2024년 통계는 작성방식이 달라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다’는 해명자료를 냈다. 이런 서울시의 해명은 여러가지로 ‘무리’다. 통계청이 당대의 조사역량을 총동원해서 생산한 통계의 신뢰성을 명확한 근거없이 흠집 내고 있다. 통계청에서는 2024년 결과 공표 전에 이미 수많은 분석과 현장 확인을 통해 2020년과 비교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시계열 비교를 통한 자료품질 검증은 통계 생산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수치에 기반해 지하정책을 펴야 할 서울시가 인구주택총조사에 대한 최소한의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문제다. 가구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정확한 전수자료뿐 아니라 가구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표본조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시가 2023년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하·옥상에 대한 ‘주거안전 취약계층 거처상태 및 실태조사’ 용역을 했지만 통계법에 따른 공표조차 할 수 없는 반쪽짜리 조사에 그쳤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밀집해 있는 지하의 열악한 주거환경은 오랫동안 사회적인 이슈였지만 거주 가구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되었을 뿐 정확한 규모를 알기 어려웠다. 참여정부 때인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지하거주 실태를 조사하기 시작한 이후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서울 지하거주 가구를 2020년 20만849가구, 2024년 24만5194가구로 공표했으면 당연하게 서울 지하거주 가구는 늘어난 것이다.
통계청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기반으로 거처 단위로 지하거주 현황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위험한 지하에 사는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 인구주택총조사는 지하에 누가, 어디에,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다.
지하주택에 대한 새로운 정책수단 도입 필요
2022년 8월 참사 현장에서 구부러진 쇠창살을 보았다. 세상을 떠난 자와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쇠창살을 구부려 빠져나올 공간을 만들려 애쓰던 이웃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벌써 3년이 지났다. 2022년 이후 서울의 지하에서는 수재뿐 아니라 화재로 인한 사망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23년 2월 구로구에서 60대가, 11월에는 강동구에서 80대가, 2024년 11월에는 강북구에서 60대가, 2025년 2월에는 강동구에서 60대가 사망했다.
서울 지하거주 가구의 정확한 규모를 알게 된 2025년 서울시장 오세훈은 달라져야 한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정부와 힘을 합치고, 통계청과 협력해서 수마와 화마보다 먼저 지하 거주민에게 달려가야 한다.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취약계층에 대한 주거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거주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지하 주택에 대한 임대 및 거주 금지 등 새로운 정책수단 도입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