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윤석열 거울’ 버려야 산다
2월 1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지귀연 재판부는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에게 무기징역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12.3 계엄이라는 헌정 유린의 책임자가 마침내 법의 심판을 받았다. 비록 1심 판결이지만 이후 항소심 등의 판단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판결은 윤석열의 내란에 대한 단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바로 이재명 대통령이 윤석열이라는 과거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내고 독자적 궤도로 도약할 결정적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양자물리학에 ‘양자얽힘’이란 개념이 있다. 두 입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쪽이 바뀌면 다른 쪽도 즉각 반응하는 현상이다. 지난 4년간 한국 정치가 딱 그랬다. 윤석열이 추락할수록 이재명은 올랐다. 윤석열이 검찰권력을 휘둘러 이재명을 압박할수록 야권은 뭉쳤고, 윤석열이 내란까지 저지르자 이재명에게 대통령의 길이 열렸다. 가해자의 몰락이 피해자의 집권 조건이 됐다. 때로는 ‘적대적 공생’으로 때로는 ‘제로섬 게임’으로 서로 얽혀 있었던 것이다.
과거에서 미래로 퀀텀점프 이룰 기회
그러나 이 얽힘에는 그림자가 따랐다. 야당 대표 시절 이재명의 존재감은 상당 부분 ‘윤석열 심판’에 기대고 있었다. 집권 후에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여전히 이 프레임이 작동한다. 탄핵 이후 적대적 공생은 ‘비대칭적 공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한쪽은 감옥에 갇히고 다른 쪽은 청와대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다. 이제 그 얽힘을 끊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8개월을 넘기며 윤석열정부와는 차원이 다른 국정 운영을 보여주고 있다. 밀어붙이기와 불통으로 일관했던 전임자와 달리 실용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 성과들이 여전히 윤석열과의 비교 속에서 평가된다는 점이다. 윤석열이 못했으니 이재명이 잘한다. 이 구도다. 키 작은 사람 옆에 서서 커 보이는 격이다. 반면교사로서 윤석열은 유용하다. 그러나 그 프레임에 갇히면 이재명 정치의 천장도 낮아진다. 60%대 초반 지지율은 반사이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재명 자신의 리더십이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다. 이제 윤석열이라는 낮은 기준점을 버려야 한다. 비교축을 내일과 세계로 바꿔야 한다. 유권자는 비교 정치가 아니라 성과 정치를 원한다.
2월 19일 선고가 그 전환의 기점이다.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퀀텀점프란 입자가 중간 단계 없이 완전히 다른 에너지 준위로 뛰어오르는 현상을 가리킨다. 법원이 윤석열을 내란 우두머리로 확정하는 순간, 그는 논쟁의 대상에서 역사의 심판을 받은 인물로 고정된다. 더 이상 경쟁자가 아니다. 과거의 실패 상징일 뿐이다. 이 대통령에게는 윤석열 좌표계에서 완전히 빠져나올 문이 열리는 것이다.
윤석열측이 이재명 재판 재개를 거론하며 다시 얽힘을 복원하려 해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반응하지 않고 사법절차를 제도 영역에 맡기면 그 호출은 공허해진다. 상대 입자의 변화가 더 이상 자신의 궤도를 흔들지 못하는 상태, 정치적 독립궤도에 진입하는 순간이다. 선고 이후 이 대통령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내란청산과 적폐심판을 전면에 세우며 과거 중심 정치를 이어가는 길이다.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국정동력이 과거에 묶인다. 다른 하나는 청산을 제도화로 넘기고 중장기 의제로 전환하는 길이다. 과거에서 미래로, 에너지 준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퀀텀점프다. 감정의 도약이 아니라 전략의 전환이다.
반면교사를 넘어 독자적 비전으로
이 대통령은 이미 후자로 움직이고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투자 확대, 청년 스타트업 육성 등 미래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적극 재정과 성장전략을 병행하는 설계도 역시 방향은 분명하다. 그러나 방향만으로는 부족하다. 속도와 실행, 그리고 체계화가 뒤따라야 한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윤석열 없이도 이재명 정치는 작동하는가. 오랫동안 맞서온 상대가 쓰러졌을 때 진짜 정체성이 드러난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독자적 비전과 철학이 있는가. 2월 19일 이후의 시간이 그 답을 요구할 것이다. 2월 19일은 적대적 공생이 역사 속으로 퇴장한 날이다. 이제 이 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독자적 궤도뿐이다. 얽힘에서 벗어난 입자만이 스스로의 속도와 방향을 가진다. 역사는 반면교사를 넘어선 자에게만 더 높은 도약을 허용한다. 이 대통령도 윤석열이라는 거울을 내려놓고 세계와 미래라는 새 좌표로 도약할 때다.
김기수 정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