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서사' 붕괴된 가상화폐, 그 미래는

2026-02-20 13:00:02 게재

가상화폐 시장의 겨울이 오고 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현물 ETF 시장에서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기관들이 주로 이용하던 선물과 현물 사이의 프리미엄이 줄어들면서, 헤지펀드들이 대규모로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는 정황도 의심된다. 그 밖의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가상화폐 시장의 ‘공포지수’는 ‘극단적 공포’로 치닫고 있으며, 비트코인 가격은 채굴에 들어가는 전기료와 장비비를 뜻하는 이른바 ‘채굴 한계 비용’ 수준까지 하락한 적도 있었다.

물론 가상화폐 시장에 있어서 이번 겨울이 처음은 아니다. 겨울이 왔다고 해서 이 시장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언어도단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가상화폐의 효시였던 비트코인의 출현 이후 이 시장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떠받쳤던 핵심적인 서사(narrative) 몇가지가 변질되거나 심지어 붕괴해 버린 상태라는 점이다.

가상화폐 시장의 존재 이유 떠받쳤던 핵심적인 서사 무너져

그 서사의 근본적인 신조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 가상화폐는 본래 ‘자산’이 아니라 대안적인 ‘화폐’임을 표방하고 나섰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다면 장부의 분산을 통해 모든 동료 간(P2P) 신뢰를 가능케 하므로, 이를 통해서 은행이라는 중앙집중적 청산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지급과 결제가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이를 활용한다면 사용자의 검열 저항성과 탈중앙화를 보장할 수 있으며, 따라서 현존하는 국민국가 중심의 세계적 통화 체제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통화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가상화폐는 단순히 가치를 보유하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일반적인 ‘자산’이 아니라 그 자체가 독립적인 ‘화폐’라는 것이 그 서사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다.

그런데 가상화폐는 정말로 ‘화폐’인가? 물론 화폐에는 지불수단 교환수단 가치저장수단 등의 여러 기능이 있고 가상화폐들이 이러한 기능의 일부를 이미 수행하고 있으며 그 발전에 따라 자연히 다른 기능들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케인즈나 잉햄 등이 지적한 바 있듯이 화폐의 가장 본원적인 기능은 바로 계산 단위로서의 기능이다. 일부 국가의 법정화폐 채택, 제재 우회 결제 등의 반론이 있기는 하지만 화폐로 가치가 매겨지는 모든 것들은 화폐가 아닌 또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다.

가상화폐가 정말로 ‘화폐’의 미래를 품고 있다면 이미 전세계적 계산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미국 달러와는 독립된 독자적 가치체계로 거래되는 경제 생태계가 초보적인 맹아의 형태로라도 생겨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몇년 동안 우리가 보았던 것은 정반대의 경향이었다. 가상화폐가 독자적 가치척도가 되기는커녕 거꾸로 거대한 시장에서 기존 화폐로 가치가 매겨졌다. 또 기존 금융통화체제의 작동, 특히 블랙록 등의 기존의 거대 자본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하염없이 등락하는 ‘대안적 자산’의 하나로 변해버렸다.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중시되자 효율성과 규제 준수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탈중앙화나 검열 저항성 등의 서사도 무너지고 있다. 결국 ‘자산 권력’이 ‘기술적 서사’를 압도하며 자본의 논리 안으로 포섭해버린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가상화폐의 미래 방향 탈중앙화 아닌 제도화일 가능성 커

그 핵심 서사가 모두 무너진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대두로 인한 정보 불신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기록의 기술로서 블록체인의 중요성은 더욱 각광받고 있다. 또 국채 부동산 금과 같은 각종 실물자산의 ‘토큰화’가 진행되면서 블록체인은 ‘새 시대의 디지털 등기소’와 같은 의미를 부여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최초의 화폐적 서사는 분명히 무너졌다. 가상화폐의 미래는 변화된 상황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그 존재이유를 분명히 각인할 수 있는 새로운 서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방향은 탈중앙화가 아니라 제도화일 가능성이 크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