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또다시 중앙은행의 시간

2025-09-02 13:00:21 게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2008년 이후 세계 자본주의는 2차세계대전 이후 가장 낮은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가 안 좋으니 중앙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졌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의 트라우마가 컸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에게 있어 글로벌 금융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기후퇴를 불러온 사건이었다. 금융위기의 파고가 닥치며 시장의 기능이 마비되자 중앙은행과 정부가 나섰다.

더 커져만 가는 중앙은행에 대한 의존도

미국 연준 등은 정책금리를 제로까지 낮췄고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렸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중 상대적으로 논란이 적은 영역은 통화정책이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면 정치적 반대자들은 색안경을 쓰고 이를 비판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시장의 불완전함을 정부의 개입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경제적 진보주의자와 가능하면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에 맡겨두는 게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는 경제적 보수주의자의 의견 충돌은 오래된 논란거리다.

재정정책에 대한 갈등은 2011년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반면 중앙은행은 정파적 이해관계와 무관한 중립적 존재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그래서 파격적인 통화정책을 쓰더라도 재정정책보다는 상대적으로 논란이 적다.

2008년 위기 이후 중앙은행은 경제에 그야말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상의 자산은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경제에 주입한 본원통화에 가까운 개념이다. 미국 GDP 대비 연준자산 비율은 2025년 8월 말 현재 21.8%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이 비율은 6.1%에 불과했다.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풀린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2022년 6월부터 출구전략을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GDP 대비 연준자산 비율은 코로나 팬데믹 직전이었던 2020년 2월의 18.9%보다 높다. GDP로 대표되는 실물경제 대비 화폐영역에서 풀려 있는 돈의 양은 여전히 많다.

돈을 푸는 방식도 파격적이다. 중앙은행은 특정 자산을 민간금융기관들로부터 매입함으로써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데 통상 만기가 짧은 국채와 정부 기관의 보증이 있는 모기지 채권을 매수해왔다. 부도 위험이 없는 안전한 자산인데다 만기가 짧아 이자율 변동 위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은 장기국채를 매입(양적완화)했을 뿐만 아니라, 정부 이외의 민간이 발행한 본질적으로 위험한 자산을 매수(질적완화)하기도 했다. 특히 일본은행은 도쿄주식시장의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수하면서 위험자산인 주식을 중앙은행의 보유 자산에 포함시키는 파격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통화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노골적인 간섭이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연준 의장에게 노골적으로 금리인하를 압박해왔다. 트럼프는 금리를 내리지 않는 파월 의장을 ‘멍청이(numbskull)’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도 미국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금리를 0.50%p 인하하는소위 ‘빅컷’을 단행해야 한다며 연준을 압박하고 있다.

9월 FOMC에서 연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 높아

트럼프와 베센트의 압박이 아니더라도 9월 FOMC에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높다. 고용과 민간소비 등에서 둔화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금융시장은 9월에 금리인하가 단행될 확률을 87.9%(연방기금금리 선물 가격에 내재된 확률)로 추정한다.

다시 중앙은행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중앙은행은 우리 시대 자산시장의 가장 든든한 우군인지도 모르겠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실물경제에 미친 영향은 미미한 반면 자산시장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