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신디지털 디바이드’를 우려한다

2025-09-03 13:00:06 게재

이재명정부가 출범하며 가장 강하게 내건 미래전략 중 하나는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이다. 이를 국가 핵심 기간산업으로 삼고 대규모 투자를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당연한 수순이다. AI는 글로벌 성장동력이자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끄는 핵심기술이며, 우리도 뒤처질 수 없다.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국민의 관심도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난봄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해 만든 지브리풍 캐릭터가 전국민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장식하면서 AI는 더 이상 전문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명했다. 보고서 작성, 마케팅 아이디어 정리 등 실무에 AI를 도입한 직장인들은 눈에 띄는 생산성 향상을 경험하고 있다. 이제 AI는 ‘필수도구’가 되고 있으며 이러한 생산성 향상이 누적되면 국가 전체의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AI 대중화의 그늘 – 디지털 격차 더 커질 수도

하지만 모두가 동등하게 이러한 혁신적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실제로 주요 AI 서비스의 고급 기능은 유료구독이다. 챗GPT Plus와 크라우드Pro는 각각 월 20달러(약 2만7000원)이고 전문가용 챗GPT Pro는 월 200달러(약 27만원)나 된다. 다양한 서비스를 병행하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러한 구독료 부담은 중산층 이상에게는 감내할 만한 수준일지 모르나 청년층 저소득층 고령층 농촌거주자에게는 현실적인 장벽이 된다. 최근 디지털금융의 확산과 은행지점 폐쇄로 인한 금융소외현상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처럼 AI 이용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격차, 즉 신(新) 디지털 디바이드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지 기술사용의 편의성 문제를 넘어선다. AI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점차 직업 역량과 소득, 사회적 기회와 직결되고 있다. 예컨대 보고서 작성이나 외국어 번역, 전략 요약 등에서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사람은 하루치 업무를 몇 시간 안에 끝내며 두각을 나타낸다. 반면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같은 결과를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생산성 격차는 곧 평가와 보상격차로 이어지고 그 차이는 누적되어 승진과 고용, 소득수준의 차이로 번질 수 있다.

게다가 AI 서비스들은 각각의 특장점을 갖고 있어 단일 서비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이로 인해 고소득층은 여러 서비스를 병행 구독하며 다양한 혜택을 누리는 반면, 경제적 여건이 열악한 계층은 기술 활용에서 점차 소외될 수 있다. 이러한 기술격차는 단순한 정보 접근성 문제를 넘어 기회의 격차, 경쟁력 격차, 그리고 결국은 소득자산 불평등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성과 공평하게 나눌 수 있도록 제도설계를

이 시점에서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AI 산업을 적극 육성하는 것은 옳지만 그 성과를 국민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어 있는가? 최근 ‘소버린 AI’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논의되고 있지만 그것이 특정 기업 계층에만 집중될 경우 AI는 모두의 미래가 아닌 일부의 특권이 될 수 있다.

정부가 AI 산업 육성에 집중하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산업 지원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실질적으로 이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국민을 위한 수요자 중심의 정책 설계도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구독료에 대한 부담 완화, 공공 접근공간 제공, 교육 및 활용 역량 강화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미리 마련된다면 AI 산업은 보다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자 다론 아세모글루가 ‘권력과 진보’에서 강조했듯이 새로운 기술이 광범위한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사회의 선택에 달려 있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기술은 중립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분배되느냐는 사회의 의지다. AI가 모두의 도구가 될지, 일부만의 특권이 될지는 지금 우리의 정책 선택에 달려 있다.

유경원 상명대 교수 경제금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