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산재예방, 고령자 대책이 관건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29일 첫 생중계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올해를 ‘산업재해 사망사고 근절 원년’으로 만들자고 선언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여전히 산재 사망률 최악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산재 사망 구조를 들여다보면 단순한 구호로는 이 목표가 달성되기 어렵다. 특히 고령자 산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근절 원년’은 공허한 말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우리나라 산재 사망자는 586명인데 이 가운데 60세 이상이 250명으로 42.7%에 달했다. 다시 말해 사망자 10명 중 4명이 고령자라는 뜻이다.
한국 사회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고령자 산재 비중은 더 높아질 공산이 크다. 산업재해 예방정책의 초점이 고령자에게 맞춰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업재해 사망사고 근절 원년, 고령자 안전부터 챙겨야
일본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2023년 기준 일본의 전체 노동자 중 60세 이상 비중은 18.7%였지만, 산재로 4일 이상 휴업한 사람 중 고령자는 29.3%였다. 특히 고령자가 증가하고 있는 상업이나 보건위생업 등 3차 산업에서 고령자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이에 일본정부는 2020년 ‘고령자 노동자 안전과 건강 확보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기업과 현장을 움직이도록 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최고경영자가 산재 예방 방침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전담 조직과 관리자를 지정해 책임 구조를 명확히 했다.
둘째, 위험 평가를 정례화해 고령자의 신체적 기능 저하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요인을 사전에 진단하도록 했다.
셋째, 직장환경을 개선했다. 신체기능을 보완하는 장비 도입에 정부가 절반의 비용(상한 100만엔)을 보조했고,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 교대제와 단시간 근무제를 확대했다.
넷째, 건강·체력 관리체계를 강화했다. 정기 건강검진과 체력체크를 제도화해 본인이 스스로 상태를 점검하도록 했고, 뇌·심장질환 위험이 큰 고령자에게는 야간근무나 고강도 작업을 줄였다.
다섯째, 교육을 차별화했다. 고령자에게는 사진·도표·영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안전교육을, 관리감독자에게는 고령자의 특성을 이해하는 맞춤교육을 병행했다.
그 결과 일본의 산재 사망자는 2013년 1030명에서 2023년 755명으로 10년 새 27% 줄었다. 정책적 개입과 세밀한 관리가 효과를 거둔 것이다.
일본의 경험이 보여주는 실효성 있는 대책 필요
한국은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건설업·물류업·서비스업 등 고령자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는 업종을 중심으로, 일본식 대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단순한 안전교육 반복으로는 사고를 줄일 수 없다. △고령자에게 적합한 근무 형태 도입 △안전 설비 지원 확대 △건강검진 및 체력 체크 제도화 △현장 맞춤형 교육 강화 등이 시급하다. 특히 정부의 재정 지원과 법적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업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산업재해는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이자 사회구조의 문제다. ‘근절 원년’을 선언한 지금, 한국이 OECD 산재 사망률 최악이라는 불명예를 벗기 위해서는 고령자 산재 예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듯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산재 사망자 감소라는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