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데이터로 여는 에너지산업의 미래
에너지를 생산·공급·소비하는 과정에서 방대한 데이터가 생성된다. 발전 송전 배전장치의 운영 데이터, 가정 공장 사무실의 전력계량 데이터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에너지산업은 전기화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설비간 연계성이 높아 데이터 확보와 인공지능(AI) 도입에 유리하다. AI가 에너지산업의 당면문제를 해결하고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2023년 구글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AI가 2030년까지 전세계 온실가스를 5~10% 감축해줄 수 있다면서 기후변화대응에서 AI의 역할을 강조했다. 4월 국제에너지기구(IEA)는 AI의 실제 활용사례를 소개했는데 엑슨모빌은 생산예측 오차를 25% 줄였고, DHL이 지원하는 독일 스타트업 그린플랜(Greenplan)은 수송연료비를 20% 절감하는 AI를 개발했다. 히타치에너지는 수요, 가격, 재생에너지 발전 예측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영국 내셔널그리드(National Grid ESO)는 AI를 통해 태양광 발전 예측을 8시간 앞당겼다.
에너지AI가 에너지산업의 당면과제 해결
각국은 에너지데이터를 확보하고 이에 기반한 AI 확산에 적극적이다. 유럽연합(EU)은 에너지데이터 공유 플랫폼인 에너지데이터스페이스(CEEDS)를 구축했으며, 이를 통해 에너지산업의 디지털화와 녹색전환을 가속화하는 한편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 및 다른 산업데이터와의 통합을 꾀하고 있다.
일본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2022년 전기사업법을 개정해 전국 8000만대의 스마트미터에서 수집되는 전력데이터를 기업이나 대학이 유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2023년부터 도쿄전력 주부전력 간사이전력 등이 데이터 공급을 시작했으며 제공된 데이터는 다양한 서비스에 활용되고 있다.
도시바는 전력수급조정 서비스에 활용하고 있으며, 다이와하우스는 그룹 건물 약 240개에서 수집한 전력데이터를 활용해 에너지효율 진단 서비스와 친환경 대응을 실시해 수익을 창출한다. 또한 에너체인지(ENECHANGE)는 전기 사용패턴을 분석하고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는 맞춤형 요금제를 제안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산업도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2030년 온실가스 40%를 감축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증가와 기온변동, 일사량 변동 등에 따른 수급 변동성도 해결할 과제다. 여기에 첨단산업 성장, 데이터센터 증가 등으로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대응해 공급여력을 보강해야 한다.
지난달 정부는 에너지고속도로 구축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전국에 산재한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그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발전 수준을 예측하고 변동성을 관리해 전력망에 제대로 통합시켜야 하는데 에너지 AI가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에너지 AI 활용 기반은 아직 미흡하다. 특히 핵심기반인 데이터가 취약하다.
정부 주도로 에너지데이터스페이스 구축해야
주요 데이터는 한전 가스공사 전력거래소 등 공공기관에 집중되어 있으나 일부만 개방됐고 개인정보·영업기밀 문제로 기관 내부 업무활용에 치중하고 있다. 또한 에너지원별로 측정데이터의 종류 수집주기 등이 다르고 표준도 부재해 데이터의 통합·가공이 어렵고 데이터 처리 역량도 낮은 실정이다.
EU 사례를 참조한 에너지데이터스페이스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이는 에너지설비 스마트미터 등으로부터 생성된 데이터를 신뢰성 있게 공유하고 교환하는 분산화된 인프라를 의미한다. 우선 민간의 관심이 높고 서비스 창출이 활발한 전력데이터를 대상으로 추진하고 이후 가스, 열 등과 연계·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에너지산업은 정부 주도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새로 출범한 정부가 에너지AI와 데이터스페이스 구축에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