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고속도로 휴게소, 문화적 쉼터로

2025-09-22 13:00:05 게재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하루 약 500만대의 차량이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7월 말 기준으로 전국 200여개 휴게소에 매일 120만명의 이용객이 드나든다고 한다. 국민의 70%가 한달에 한번 꼴로 휴게소를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휴게소가 이제는 국민 대다수의 필수 이동 인프라가 된 셈이다.

그간 이용수요가 늘어난 데다 각종 국제행사를 계기로 휴게소 및 편의시설은 이전보다 크게 개선되었다. 이동 편의를 위해 버스 환승 기능까지 갖춘 곳도 생겼다. 에너지절감 차원에서 주차장에 태양광 지붕을 설치하기도 한다. 특산품 판매소와 함께 지역관광자원을 소개하는 팜플렛도 흔히 볼 수 있다.

상업 중심, 거리간격 위주의 위치 선정, 획일적 건물 배치

최근 들어 특화된 디자인을 통해 문화적으로 변신하는 휴게소가 등장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휴게소가 일정 거리간격으로 위치를 정하고 표준화된 설계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능적으로 건축물을 배치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이면에는 편의시설 중심, 상업성 위주, 변화에 무감각한 운영자들의 사고 프레임이 있는 것 같다.

여건이 많이 바뀌었다. 도로시설이나 차량성능이 개선되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빠르고 편리해졌다. 이제 급한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수십 명씩 점령하듯이 휴게소에 들렀다 빠져나오는 경우는 줄어들었다. 국제화되면서 연간 200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온다. 이들에게 휴게소는 공항이나 철도역에 버금가는 공공의 얼굴이다. 무엇보다 소득 4만달러 시대를 내다보며 국민들의 여행방식이 개성화되고 고급화되었다. 선진국의 예에 비추어 휴게소가 갖는 독특한 가치를 살리는 방향으로 설계·운용 시각을 바꾸면 좋겠다.

첫째, 휴게소의 문화적 공공성을 살리는 것이다. 우리 국토는 지역의 관광자원이 되는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계절별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명승과 천연기념물 같은 자연유산도 많다. 국민들이 보고 느끼고 관심을 가져야 할 국가자산이다. 이러한 지역 기반 유산을 실물 혹은 디지털 방식으로 이용객에게 관람하게 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장소로 쓰여지면 좋겠다.

둘째, 창의적 설계가 필요하다. 노르웨이 휴게소는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조명설계를 통해 낮과 밤의 모습이 달라지도록 연출된다. 고품격 정원 같다. 저가입찰 하에 기능적 건축물을 배치하는 것에 머문 우리 휴게소의 건축·조경과는 다른 모습이다. 기계화된 시대의 사고를 벗어나 개성있고 창의적인 설계를 통해 장소성이 돋보이는 휴게소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셋째, 지역관광 거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일본은 1200여개의 국도 휴게소가 온천·숙박시설·박물관·특산물판매소·문화체험관·테마파크와 같은 시설을 갖추고 있어 휴게소 자체를 방문하는 관광객도 많다. 단순한 교통시설로서의 휴게소를 넘어 지역민과 관광객 모두를 만족시키는 지역거점 관광플랫폼 역할을 한다. 심해져 가는 지역소멸 대처에 주는 의미가 크다.

넷째, 모든 휴게소가 편의시설 위주로 채워질 필요는 없다. 유럽의 일부 휴게소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서 작가들의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인공시설물을 최소화하고, 경관산책로와 전망대를 테마로 설계한 곳도 적지 않다. 소음차단을 위한 지형 조성, 가까운 자연으로 연결하는 걷는 길 등은 이용객에게 여유로운 휴식을 가능하게 하는 설계요소가 되기도 한다.

문화적 가치를 살리는 설계와 운영 필요

휴게소는 이제 단순한 통행시설을 떠나 문화관광시설로 분류될 시점에 와 있다. 문화 건축 경관 지역의 가치와 어우러진 휴게소는 문화적 쉼터 그 자체다. 국민의 이동이 곧 여가의 흐름인 시대인 만큼 휴게소는 머물고 싶은 장소로 진화해야 한다. 신축적 사고, 정부·지자체·민간의 협업과 협력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국격 향상, 지역발전과 결부되는 것이기도 하다.

유병권 중앙대학교 초빙교수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