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통화스와프는 만병통치약일까
우리 통상협상단이 미국 측에 무제한 한미 통화스와프 개설을 요청했다고 한다.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펀드 조성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방어막으로 제시된 카드다. 우리 외환보유액의 80%가 넘는 규모를 외환시장에서 조달하려 할 경우 원화가치 급락 등 시장 충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선뜻 응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 연준(Fed)이 상설로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제공하는 국가는 일본 영국 등 소수의 기축통화국에 한정되어 있다. 또한 현재는 달러 부족으로 인한 위기상황도 아닐 뿐더러 관세 협상 테이블에 연준이 앉아 있지도 않다. 그래서 협상용 카드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통화스와프 조건 제시는 아마도 우리 협상단의 최선의 선택지였을 것이다. 상식이 안 통하는 무지막지한 저들의 요구에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제안을 그 실현가능성 여부에 맞추어 평가해서는 안된다.
통화스와프로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
만일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이 성사된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효과를 갖는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연준이 한국을 국제금융의 핵심 축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로 인한 신인도 제고 효과는 모건 스탠리 캐피탈 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승격이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효과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크다.
그렇지만 보다 냉정한 점검이 필요하다. 통화스와프로 당면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첫째, 통화스와프는 장기 투자자금을 빌려주는 수단이 아니다. 현재 연준이 일본은행 등에 제공하고 있는 상설 통화스와프의 만기는 7일 또는 84일이다. 상황에 따라 롤오버(roll-over)가 가능하지만 1~2개월 정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이 거대한 장기 투자자금의 조달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다.
둘째, 환율상승 압력 해소용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연준의 통화스와프는 달러 유동성 위기 상황에서 금융기관과 기업의 달러 결제자금을 공급하는 장치이다. 연준은 스와프라인이 달러 유동성 공급 목적임을 강조하며, 환율안정은 각국의 통화정책 및 외환보유액 운용의 몫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스와프라인의 확보는 만일의 위기상황을 예방하고 이에 따른 시장안정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3500억달러의 현금투자가 지닌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협상이 어떤 형태로 결론이 나더라도 한국경제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대응방안(플랜B)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섣부른 통화스와프 기대의 위험성
과거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번 빠지지 않고 등장해왔다. 예컨대 2022년 하반기 미국의 급격한 긴축으로 달러/원 환율이 폭등하자 언론을 중심으로 한미 통화스와프 재개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이는 2008년과 2020년 위기 상황에서 한미 통화스와프가 보여준 효과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통화스와프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동안 통화스와프 주장을 펼쳐온 논평들을 보면 처방의 내용과 효과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막연한 기대만 앞세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안일한 주장은 자칫 국민에게 헛된 희망고문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을 지연시킬 우려가 있다. 통화스와프는 우리 외환·금융시장의 비상시 안전판으로서 가치가 분명하지만 모든 어려움을 일거에 해소해줄 마법의 묘약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