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국민연금 주가 떠받치기는 ‘이제 그만’
“연기금들은 국내 주식투자 비중이 왜 그렇게 낮으냐.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 얘기다. 코스피지수 5000을 목표로 내건 이 대통령의 조바심이 묻어나는 발언이다. 코스피 지수가 새 정부 들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에 연기금이 조금 더 받쳐주면 좋지 않겠느냐는 진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이런 관심은 자본시장 발전을 바라는 순수한 뜻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믿는다. 한편으로는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동학개미 표심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통상 1500만명으로 추산되는 동학개미는 이 대통령뿐 아니라 정치인 누구에게나 가장 큰 압력집단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과도한 압박 바람직하지 않아
그러나 정치권이든 동학개미든 국민연금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장 이 대통령의 언급은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추가 투자를 압박해 주가를 떠받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아무리 디테일에 강한 대통령이라고 해도 연기금의 국내 주식투자 비중까지 직접 언급해야 할 사안인지도 의문이다.
물론 연기금이 국내주식을 매수해 주가가 오르면 해피엔딩 스토리로 완결될 것이다. 무엇보다 연기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률이 높아지면서 연금재정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현재보다 수익률 1%p만 높여도 기금 고갈시점을 5년 늦춘다는 추계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는 낙관론에 근거한 시나리오다. 반대로 오르기만 하던 주가가 갑자기 폭락한다면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인 국민연금도 손실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주식시장은 신도 모르는 영역이라고 하지 않은가.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매년 5월 열어 향후 5년 중기자산배분 계획과 다음 연도 자산배분 비율을 확정한다. 기금위가 지난해 5월 의결한 올해 말 국내주식 목표 비중은 14.9%다. 2017년 20% 수준이던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 목표치는 2029년 말 13%까지 축소될 예정이다.
국내주식 비중 축소는 합리적이다. 일부 추계대로 2048년 적자전환에 대비하려면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엑시트 플랜’이 필요하다. 어느날 갑자기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을 대거 내다판다고 생각해보라. 국내 주식시장은 대폭락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다. 또 국내주식 비중을 줄인다고 해도 당분간 국민연금 기금이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절대 금액은 감소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이 동학개미의 공적이 됐던 것은 이 자산배분과 관련이 있다. 2021년 초 국민연금이 51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갔을 때가 대표적이다. 당시 주가폭등으로 2000년 말 국내 주식 비중이 21.2%로 올라가 그해 목표(17.3%)를 초과했고, 21년 목표(16.8%)까지 초과하면서 이를 맞추려고 매도한 것이다.
국민연금 전략적 자산배분 비중 원칙 지켜야
자산배분이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라’는 투자의 기본원칙을 지킬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자산배분 비중을 맞추려고 주식을 매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비쌀 때 파는 일이 된다. 반면 자산배분 비중을 밑돌아 매수하는 일은 주식이 쌀 때 사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자산배분이 국민연금 수익률에 기여한 비중을 90% 이상으로 꼽는다, 국민연금이 정치권이나 여론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전적걱 자산배분 비중을 고수하기를 응원한다. 그것이 그렇지 않아도 선진국의 공적연금 수익률에 비해 낮다는 평가를 받아온 지금의 수익률이라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