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자율적 자주국방’과 주한미군
10월 1일. 오늘은 건군 77주년 국군의 날이다. 국방부는 충남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선진강군’을 주제로 기념행사를 조용하게 치렀다. 행사는 조촐했지만 ‘자주국방’을 다짐하는 목소리는 드높았다. ‘자주국방’이란 말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늘 들어온 익숙한 용어지만 최근 한반도 정세와 맞물리며 심상치 않은 의미를 성찰하게 만든다.
주한미군 감축, ‘전략적 유연성’ 들먹이는 안보위협카드에 대응 메시지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일 유엔총회 연설 차 출국하기 직전 갑자기 페이스북을 통해 “강력한 자주국방의 길을 열겠다”며 ‘자주국방’ 의지를 천명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1년 국방비가 북한 국가총생산의 약 1.4배이고, 세계 군사력 5위를 자랑하며 경제력에서 북한의 수십 배에 이르고 인구는 2배가 넘는다”면서 “중요한 건 이런 군사력 국방력 국력을 가지고도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일각의 굴종적 사고”라고 썼다.
이제까지 안보 관련해선 실용적 차원에서 낮은 자세를 유지해오던 것과 판이한 센 표현이 나온 것이다. 이 대통령 글이 ‘강력한 자율적 자주국방’이란 이색적 표현과 더불어 주목받게 된 까닭일 터다. 상세히 공개할 수는 없지만 미 트럼프 정부로부터의 관세협정 압박에 이어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등 으름장을 곁들인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미국의 ‘3500억달러 선투자 압박’에 “미국 협상안에 동의했다면 한국은 IMF사태와 같은 경제위기를 겪게 되고 나는 탄핵 당했을 것”이란 ‘타당한 명분론’을 들며 버티자 미국이 마지막 안보위협카드를 흔드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그렇게 본다면 갑작스런 ‘자율적 자주국방’ 강조는 미국을 향한 메시지인 동시에 우리 국민을 향해 향후 주한미군 감축 등등의 거센 압력이 밀려올 수 있으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지지해 달라 호소하는 ‘예방주사’를 놓은 것일 수 있다.
동맹국을 겨냥한 미국의 관세압박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지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다. 더욱이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근로자 체포·구금사태 수모까지 겪은 터라 국민의 반감과 분노 수위는 한껏 높아져 있다.
트럼프의 폭주는 미국의 최대 강점이던 ‘신뢰자산’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소탐대실’의 전형을 보여준다. 주한미군 감축·철수를 들먹이는 안보위협카드는 미국으로선 이제껏 가장 효과적이었던 ‘만능보검’이었다.
그러나 국민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 ‘냉정한 국제관계에서 미국이 자기 필요에 따라 주한미군을 감축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아무리 우리가 읍소한들 눌러있겠느냐, 우리가 그에 걸맞게 대처하면 된다’는 쿨한 반응이 커졌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요구와 ‘동맹현대화’에 도사린 ‘원하지 않는 전쟁에 휩쓸릴 위험성‘도 대체로 감지하고 있다.
안보위협을 버티는 밑바탕에는 우리 국민의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 같다. 2024년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평가한 우리 군사력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에 이은 5위다. 6위 영국과 7위 일본을 앞선다. 북한은 36위로 평가했다. 핵무기 열세를 어느 정도는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세계 10위권 경제력, K-컬쳐 등 한류 문화파워에 이어 무엇보다 친위쿠데타 내란을 평화적으로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국력은 커졌고, 상대적으로 미국의 힘은 빠지면서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급속히 변모하는 불안정한 국제정세가 우리의 기울어진 시각을 균형에 가깝도록 교정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내란 극복 자신감에 미국의 ‘공포마케팅’ 안 먹힐 듯
현대전에서 든든한 군사동맹 우방이 있으면 안심이 된다. 미국의 확장억지는 북핵 위협을 감소케 하는 필수 요소다. 그러나 스스로를 지킬 자주국방 역량이 없으면 눈물을 삼키며 종속과 불평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재명정부의 어려움은 이제부터 시작이고 향후 수많은 힘든 고비를 넘어야 할지 모른다. 다만 윤석열의 무한폭주가 무소불위 검찰의 실체를 일깨웠듯 동맹국을 파트너로 존중하지 않고 하위 졸개로 깔보는 트럼프식 오만과 막무가내 횡포가 미국의 진면목을 바로 보게 하는 역설적 깨우침의 기회가 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