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한미 통화스와프, 실현 가능할까

2025-10-02 13:00:01 게재

모든 신용위기는 궁극적으로 채무를 이행할 돈이 부족할 때 발생한다. 특정 플레이어의 채무불이행이 신용이라는 관계망을 타고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때 위기의 파장이 커진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충분한 유동성을 경제에 주입해야 한다. 유동성 공급의 책무를 맡은 기관은 중앙은행이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경제의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로 불린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유동성 위기는 한국은행의 개입으로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국가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동성의 부족, 즉 기축통화인 달러를 매개로 한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을 때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났던 1997년 외환위기, 미국 금융기관 파산에 한국 시중은행들의 단기 달러유동성 관리 부실이 더해지면서 나타났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역병의 확산으로 글로벌 경제가 얼어붙었던 2020년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한국경제는 극단적 위기상황으로 내몰렸다. 한국 땅에서 달러를 만들어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통화스와프’ 통해 진화

달러 유동성 위기도 ‘최종 대부자’가 있어야 해결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회원국들의 유동성 위기 때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다. 1997년 12월, 한국은 IMF구제금융을 받고서야 외환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44년 미국 브레튼우즈에서 합의된 국제 통화 시스템의 산물인 IMF는 자본주의 블록 내에서 국지적인 위기가 발생했을 때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전세계적인 신용경색이 발생했을 때는 IMF로 대처하기 힘든 구조였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가 그랬다. 위기의 진원지는 자본주의의 변방이 아닌 미국이었고 안전자산인 달러 유동성은 급속도로 말라갔다.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최종 대부자로 나섰다. 미국 내부적으로는 ‘양적완화’ 등과 같은 파격적 통화정책으로 달러 유동성을 풀었고, 미국 밖의 달러위기는 ‘통화스와프’를 통해 진화했다.

통화스와프는 중앙은행 간 통화를 교환하는 행위다. 한미 통화스와프의 경우 한국은행은 연준으로부터 달러를 공급받고, 그 대가로 연준에게 원화를 송금한다. 서로 통화를 맞바꾼다는 의미에서의 ‘스와프(swap)’지만 사실상 미국에 의한 일방적인 달러 지원이다. 한국은 달러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원화가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다시 한미 통화스와프가 거론되고 있다. 연준으로부터 통화스와프라는 안전장치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3500억달러에 이르는 대미 투자 수행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한국 관료들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협상전략으로서는 훌륭하나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긴 쉽지 않을 것이다. 달러 유동성과 관련해 연준이 한국의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최종 대부자’라는 말에는 위기상황에서의 소방수라는 개념이 내재돼 있다.

무리한 요구지만 협상카드로 활용 가능한 의제

연준과 상시적으로 통화스와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이 존재하고 있기는 하다. 유럽중앙은행 영란은행 캐나다중앙은행 스위스국립은행 일본은행 등이 그들이다. 이들이 연준과 통화스와프를 맺을 수 있었던 건 금에 의해 달러 가치가 지탱되던 1960년대까지의 국제통화질서에서 달러의 권위가 흔들릴 때 미국에 도움을 줬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연준에 통화스와프를 요구하는 건 무리다. 다만 3500억달러라는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그것도 선불(up front)로 하라는 미국의 요구 자체가 무리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은 쉽지 않겠지만 투자의 조건과 시기 등을 논의하는 협상카드로서는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의제라는 생각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