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최저치 경신한 구인배율 충격
지난 8월 구인배율이 0.44를 기록하며 외환위기 이후 27년 만의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는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닌 한국 경제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가 핵심이다. 위로는 미국의 리쇼어링 압박이, 아래로는 중국의 기술추격이 동시에 진행되고 AI 이용이 본격화되면서 한국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변화는 제조업 핵심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석유화학 산업의 경우 국내 10대 기업 합산 영업이익률이 2021년 12.5%에서 3년 만에 14.3%p 하락이라는 전례없는 실적을 기록했다. 배경에는 중국의 전략적 자급화가 있다. 중국은 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 주요 석유화학제품의 자급률을 100% 달성했다. 한국의 대중 수출액도 2013년 이래 10년 사이 28% 감소했다.
문제는 석유화학이 한국 제조업 생산의 12%를 차지하며 연관 산업까지 포함하면 전체 제조업 고용의 30%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실제로 8월 제조업 구인이 전년 대비 1만6000명 감소해 전체 구인 감소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미국의 리쇼어링 압박, 중국의 기술추격, AI 도입 본격화 영향
철강 조선 등 다른 주력 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단순한 과잉생산에서 벗어나 경쟁력 있는 기업 위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펴면서 한국 기업들이 기대했던 중국의 자멸적 과잉투자가 아닌 전략적 산업재편이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의 압박은 더 직접적이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140조원을 투자해 22개 공장을 건설 중이면서 투자 예산 배분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총투자의 60%를 해외에 배정하며 국내 신규 라인 투자를 연기했고, LG에너지솔루션도 미국 공장 가동과 함께 오창공장 확장을 미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는 환영하지만 최근 사례에서 보듯 한국 근로자의 현지 파견은 불법화하면서 현지 고용을 강요하고 있다. 결국 제한된 투자 재원이 해외로 집중되면서 국내 신규 채용 여력이 줄어드는 구조에 갇혔다.
더욱이 인공지능(AI)의 고용대체 속도도 예상보다 빠른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사무직의 AI 노출도가 100%에 달하면서 실제로 기업들은 신규 채용 축소를 선택해 청년 일자리가 집중적 타격을 받고 있다.
미국의 리쇼어링 압박, 중국의 기술추격, AI 이용의 본격화 등 세 요인이 2023년부터 본격화되면서 2024년 하반기부터 고용지표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추격으로 수출 감소, 미국 투자로 해외생산 증가, AI 도입으로 필요 인력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구인배율이 구조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일까?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일본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우리보다 빠른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구직자의 수에 비해 구인자 수가 높아 구인배율이 1.25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고령화의 결과이면서도 동시에 기술력 확보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국도 중국이 아직 추격하지 못한 정밀 소재, 반도체 장비 등 틈새 분야에서 압도적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시스템 혁신이다. AI와 협업할 수 있는 창의적 사고력, 복합문제 해결 능력, 평생학습 역량을 기르는 교육으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 더욱이 42만명의 20대가 구직을 포기한 현실에서 기존 실업급여 중심의 사회안전망으로는 한계가 있다.
27년 만의 최악 구직난, 개인 기업 정부 모두 근본적 대책 시급
현재의 구인배율 0.44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전환기를 상징한다. 정부는 단기적 고용 대책에 매몰되지 말고 20~3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기업들은 비용절감보다는 미래 인재 투자를 확대하고, 개인들은 평생학습을 통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27년 만의 최악 구직난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고용시장에 패러다임 전환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상응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개인 기업 정부 모두에게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