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권한대행체제와 적극적 현상유지 행정
지방행정의 목적은 시민의 삶을 지키는 데 있다. 행정의 연속성과 안정성은 그 기반이다. 그러나 단체장 궐위로 인한 권한대행체제에서는 ‘현상유지행정’이라는 말이 자칫 ‘소극성’과 동일시되는 오해를 받는다. 변화나 결정을 미루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현상유지라는 인식 때문이다. ‘현상유지’의 사전적 의미가 지금의 상태 그대로 버티어 나아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현상유지’와‘적극성’을 조합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한 현상유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문제해결을 통해 현상의 악화를 막는 것’이다. 권한대행은 법적으로 제한된 권한 안에서 시정을 운영한다. 주요 정책 결정이나 인사 등은 신중해야 하고, 정치적 중립도 엄격히 지켜야 한다. 그렇다고 행정이 멈출 수는 없다. 시민의 일상은 권한대행체제를 이유로 그 행정의 공백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지난 4월부터 반년 째 권한대행체제를 보내고 있다. 이러한 대행 체제가 내년 민선 9기 출범까지 1년 반 가까이 이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이 기간 동안 행정이 멈춘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정도(程度)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직무유기이며 현상유지를 빌미로 행정을 멈추는 것은 공직자의 본분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현상유지, 문제해결로 현상악화 막는 것
최근 필자가 주재한 대구시청 간부회의에서도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 자체가 현상유지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적극적인 현상유지행정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재난에 대응하고,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며,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모든 노력, 즉 흔들림 없는 시민들의 일상이 바로 우리가 지켜야 할 ‘현상’이다.
실제 올해 대구시는 봄부터 여름까지 ‘도심 대형산불’과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 ‘폭염’ 등 여러 차례의 재난과 위기 상황에서 흔들림 없이 대응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넘겼다. 이는 공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세심한 대응과 현장 중심의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직자들이 ‘대행체제이니 기다려보자’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시민의 안전이 우선이다’라는 마음으로 현장을 지켜준 덕분이다.
내년 6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다가오면 전국의 많은 지방정부와 공공기관이 권한대행체제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기야말로 지방행정의 성숙도와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험대이자 다음 체제의 성공적인 출범을 위한 디딤돌이다.
권한대행체제는 ‘공백의 시기’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정책의 지속성과 행정의 연속성을 지켜내는 ‘책임의 시기’인 셈이다. 이 기간 동안의 ‘적극적 현상유지행정’은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행정의 가치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민생의 불안을 막으며, 불필요한 행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히 챙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대구시는 장기간의 권한대행체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시민들의 불편이 없도록 행정의 빈틈을 채우며, 언제나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정 속의 변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권한대행체제 공백이 아닌 책임의 시기
‘현상유지행정’은 결코 정지의 다른 이름이 아니며 그것은 오히려 시민의 일상을 지켜내기 위한 또 다른 능동적인 행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