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디지털 오디오시대 라디오가 살 길

2025-10-14 13:00:01 게재

디지털 오디오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글로벌 오디오 스트리밍 시장 규모가 2024년 437억달러(약 60조 원)에서 2030년 1153억달러(약 158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마트 기기의 보급,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확산, 개인화 및 추천 알고리즘을 통한 사용자 경험 향상, 수익모델의 발전 등이 시너지를 이루면서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욱 많은 오디오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전통적인 라디오의 존재감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한국의 라디오 청취율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확연히 낮다. 주 1회 이상 라디오를 청취하는 비율이 영국은 85%, 일본은 50%인데 비해 한국은 15%대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의 라디오 콘텐츠 경쟁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라디오를 듣는 것이 너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통합 플랫폼으로 라디오 존재감 되살리기

스마트폰과 스트리밍이 일상화된 시대에 아날로그 FM 주파수만으로는 청취자들의 수요와 생활 패턴을 따라잡기 어렵다.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는 라디오 앱이 있긴 하지만 방송사마다 별도 앱을 운영하고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경험도 제각각이다. 이용자는 원하는 방송을 찾기 위해 여러 앱을 전전해야 한다. 디지털 오디오 산업이 데이터와 인공지능에 기반해 맞춤형 경험을 제공하는 동안 라디오는 접근하기 어렵고 이용하기 불편한 미디어가 되었다. 이러한 구조가 라디오의 청취율을 떨어뜨리고 젊은 세대의 접근을 가로막는다. 상황을 바꿔야 한다.

하나의 유력한 해법은 통합 플랫폼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성공사례가 있다. 일본의 라지코(Radiko)는 전국 99개 민영 방송사와 NHK를 하나의 앱으로 묶어 채널을 손쉽게 탐색하고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영국 라디오플레이어(Radioplayer) 역시 500여개의 라디오 채널을 하나의 앱에서 제공한다. BBC와 민영 라디오가 함께 참여해 방송의 공공성과 시장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영국과 일본의 높은 라디오 청취율은 이러한 사회적 인프라에서 나온 결과다.

통합 플랫폼은 단순히 편리한 라디오 서비스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디지털 오디오 산업의 한축으로서,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와 경쟁하면서도 공존하고 협력할 수 있는 전략적 대안이다. 라지코와 라디오플레이어는 이용자 데이터를 활용해 타겟 광고를 제공하는 한편 커넥티드카 등으로 서비스 플랫폼을 확장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하면 그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진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모델이 도입된다면 청취자는 훨씬 쉽게 라디오를 접할 수 있다. 방송사는 새로운 데이터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지역성을 살린 서비스나 광고도 더욱 정교하게 운영할 수 있다. 인공지능 생태계 및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의 결합은 라디오의 접근성과 활용성을 폭발적으로 확대시킬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K-팝의 인기로 한국 오디오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언어적 시간적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현재, 탄탄한 라디오 플랫폼 생태계의 구축은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할 수 있는 K-오디오 플랫폼 구축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라디오 생태계 재설계할 마지막 기회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누가, 어떻게 시작하느냐다. 개별 방송사나 민간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공성과 수익성의 균형 등 다양한 과제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업계가 라디오를 지키기 위한 공감대 위에서 함께 움직여야 한다. 통합 플랫폼을 통해 라디오가 시대에 맞는 미디어로 재도약할 때 국내 오디오 산업 전반의 경쟁력도 더욱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그런 출발점을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미래의 열매를 위해 라디오 생태계를 재설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상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