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엉터리 예측 논란
정부가 ‘인공지능(AI) 3대 강국’ 진입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AI 데이터센터에 소요되는 전력수요 예측을 놓고 부처 간에 엇박자가 전개되고 있는가 하면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입지로 수도권을 선호하고 있어 자칫 전력부족 사태로 3대 강국 진입 차질이 우려된다. 이와 함께 전력량을 늘리기 위한 신규 원전 건설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두고 힘겨루기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감사원은 최근 정보통신 인프라 관련 감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 예측은 정확한 현황 파악이 기본인데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 산업통상부 등 부처별 자료가 제각각으로 서로 차이가 나는 등 관련 부서가 데이터센터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관련 부서, 데이터센터 수조차 제대로 파악 못해
산업부는 국내 데이터센터 수가 2023년 말 현재 148개인 것을 전제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2024~2038년)을 수립했으나 당시의 실제 데이터센터 수는 314개였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감사원은 이어 매년 데이터센터 신·증축이 예상되는 데도 일부 데이터센터 사업이 누락되는 등 제11차 전기본의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예측이 합리적 근거 없이 과소 산정됐다고 강조했다.
또한 데이터센터 에너지 효율 극대화 사업도 사실상 방치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력수요가 과소 예측되면 AI분야 전력 부족과 산업 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조속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실제로 정부가 불어나는 전력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우리나라가 전력부족 국가로 전락해 블랙아웃(대정전)이나 제한 송전이 나타나면서 ‘AI 3대 강국’은 커녕 생존도 장담하기 어렵게 될 것이 분명하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 시장은 연평균 13%씩 성장, 2028년에는 약 10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건설사들은 이를 반기면서 데이터센터 건설을 통해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달성할 수 있는 기반 마련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데이터센터는 수많은 서버를 가동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데 방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데이터센터 한곳의 전력 사용량은 중소도시 전체 수준과 맞먹는다. 더구나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필수여서 피크타임 부담이 아닌 상시 부하 증가로 작용한다.
수도권은 전력망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이미 전력난을 겪고 있다. 서울의 전력 자립률은 지난해 기준 고작 11.6%에 불과하고 경기도도 62%에 그치고 있다. 반면에 원자력발전소가 많은 경북은 228%,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전남은 213%로 전기가 남아돈다. 이밖에도 자립률이 100%를 넘는 시도는 충남 207%, 강원 156% 등 7개나 된다. 이같은 불균형과 송전 인프라 부족으로 생산만 되고 사실상 버려지는 전력이 8.9GW(5월 기준)에 달한다.
한전은 송전 인프라의 과부하를 막고 투자 우선순위 결정을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전력계통 영향평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에 따라 한전은 기업들로부터 전기사용 신청을 받은 뒤 이를 승인한다. 한전이 이 제도를 도입한 뒤 올해 6월까지 접수받은 데이터센터 전력공급 신청 건수는 290건에 달했다. 이중 67%인 195건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이들이 사용할 전기를 모두 합치면 20GW에 달한다. 보통 대형 원자로 1기 설비 용량이 1GW이므로 원전 20기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이처럼 상당수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건설입지로 고객 수요가 많고 전문인력 확보가 용이한 수도권을 원하고 있으나 수도권 전력 사정상 수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데이터센터 건립 붐 오히려 전력 안보 해치지 않을까 우려
수도권의 전력난을 해소하려면 전기가 남아도는 지역에서 전기를 대거 끌어오거나 수도권에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면 된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다.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은 환경과 주민 반대 등으로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입지 특성상 수도권 설치가 어렵고 출력 변동성도 커 안정적인 데이터센터 전력원으로 쓰기에 한계가 있다.
지금도 데이터센터 10곳 중 7곳이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지금과 같은 수도권 집중과 전력망 확충속도라면 15년 뒤 정전없는 전력공급은 낙관하기 어렵다. 데이터센터 건립 붐이 오히려 전력 안보를 해치지 않을 까 우려된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