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주식시장’ 아닌 ‘경제 실상’ 직시해야
주식시장 상승행진에 거침이 없다. 코스피지수가 연일 최고가 기록을 깨고 있다. 교착상태에 있던 한미관세협상이 곧 타결될 것이라는 기대에 더해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투자를 망설이게 했던 ‘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 기대감이 커진 게 큰 요인으로 꼽힌다. 새 정부의 상법 개정과 기업지배구조 개혁 추진이 외국인들의 ‘바이 코리아(Buy Korea)’ 행렬에 불을 댕겼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대한민국 투자 서밋’ 행사에 참석해 “전 세계 투자자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걱정하지 않고 ‘코리아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코스피 5000시대 진입’을 공언하며 증권시장 체질 개선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더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들은 코스피지수가 3600을 넘어선 지난 10일 하루에만 한국 주식을 1조원 넘게 순매수했다.
코스피지수 연일 최고가 기록 깨고 외국인들은 ‘바이 코리아’ 행렬
증권시장 활황은 여러모로 반가운 뉴스다. 국민들의 투자 자산이 부동산에 지나치게 쏠려있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증시로 돈이 옮겨가면 상장기업들의 자금조달 기회가 그만큼 넓어지고, 주식투자자들에게는 ‘부(富)의 효과’를 높여 소비활황으로 이어지는 등 장점이 많다. 미국의 요즘 경제 질주가 그걸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정부 출범이후 주요국들과 끝없는 관세전쟁을 벌이며 경제에 주름살을 끼치고 있지만 미국 소비시장이 건재하고, 기업들은 투자자금 조달에 별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다. 증시 활황이 지속되고 있는 덕분이다.
그러나 한국의 증시활황을 미국의 경우와 그대로 빗대기에는 짚어봐야 할 게 많다. 극소수 특정 종목에 편중된 쏠림현상부터가 그렇다. 한국 증시는 지난 10일 기준으로 한 달 새 코스피 시가총액이 약 248조원 불어났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 시가총액 합계액이 약 219조원 증가했다. 전체 상승분의 90% 가까이가 단 두 개 기업에 집중된 것이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매그니피슨트(magnificent) 7’으로 불리는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한동안 증시 활황을 주도했지만 요즘은 팔란티어, 브로드컴, 오라클 등 인공지능(AI) 차세대 주도주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증시를 떠받치는 초우량 상장기업들의 저변이 그만큼 넓다.
한국은 ‘AI발 글로벌 반도체 랠리’에 올라탄 두 회사 외에는 눈에 띄는 종목을 찾기 어렵다. 한국 산업을 떠받쳐 온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업종 대부분이 위기상황에 있다. 중국의 빠른 추격에 위협받아온데 더해 미국과 유럽의 ‘관세 폭격’까지 가해지고 있어서다. 30년 넘게 한국 산업을 이끌어온 이들 업종을 대체할 신산업이 아직껏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고 있다는 건 더 심각한 문제다. 한마디로 ‘코리아 프리미엄’을 받쳐줄 ‘상장기업 선수층’이 너무나 빈약하다.
정부가 증시의 지속가능한 상승을 이끌기 위해서 해내야 할 ‘숙제’가 여기에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산업과 기업이 등장해 증권시장과 경제 전반에 새 살이 돋아나고 있는 미국, 국가가 긴 안목을 갖고 주력산업을 육성해 세계 최강 기업들을 길러내고 있는 중국과 대만의 사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기초 작업을 외면하거나 소홀히 한 채 증시체질 개선작업에만 매달려서는 한계가 불가피하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기업관련 정책 전반을 되짚는 게 급선무다. 100세 시대를 맞아 불가피해진 정년연장과 ‘과로사회 탈출’을 위한 근로시간 추가 단축, 도무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산업현장 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중대재해처벌제도 등이 그렇다. 각각의 정책에는 추진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고 시급성도 있지만, 문제는 유연성이다. 이들 문제를 한국보다 먼저 맞닥뜨려 해결책을 찾아낸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들의 사례를 제대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획일적이고 경직적이지 않게, 운영의 묘를 살리는 유연한 제도 시행’이 성공적으로 새 산업을 일으켜내고 있는 나라들의 공통점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증시 호황에 들뜨기보다 ‘코스피 5000’ 입성 위한 근본적 과제 해결을
단기적으로는 3500억달러 대미투자펀드를 놓고 교착상태에 빠진 한·미 통상협상, 급등세를 멈추지 않고 있는 원·달러 환율로 인한 물가비상 등 발등의 불로 떨어져 있는 경제현안 해결이 시급하다. 이런 문제들에 눈감은 채 당장의 증시호황에 환호하고 들떠있을 때가 아니다. 진정한 ‘코리아 프리미엄’을 세계인들에게 인정받으며 ‘코스피 5000시대’에 입성하기 위한 과제들에 온전하게 눈떠야 한다.
이학영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