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자산의 상승인가, 화폐의 하락인가

2025-10-27 13:00:09 게재

최근 글로벌 자산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 S&P500과 나스닥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 선포로 주가가 급락했던 4월 9일 이후 6개월 만에 각각 35%, 50% 이상 상승했고, 코스피는 10월 현재 3900선을 넘어 같은 기간 70% 올라 있다. 최근 들어 다소간의 조정이 나타났지만 금 가격도 온스당 4000달러를 훌쩍 넘겨 작년 말 대비 57%나 높은 수준이다.

국별로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부 국가의 부동산 가격도 상승 추세다. 한마디로,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이 동시에 상승하는 현상, 즉 ‘모든 실물 자산의 가격상승(everything rally)’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모든 실물자산의 가격 상승’은 ‘통화가치의 희석’ 현상

이러한 현상은 통상적인 경기사이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안정된 경기 흐름, 대규모 AI 투자, 금리인하 등 다양한 상승 요인이 있더라도 위험자산 가격이 오르면 안전자산 가격은 대체효과로 약세를 나타내거나 큰 변동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모든 실물자산의 가격이 오르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산가격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화폐가치가 내리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통화가치 희석, 즉 디베이스먼트(Debasement) 현상이다.

디베이스먼트는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환율 절하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통화 간의 상대적 가치가 아니라 통화 전반의 내재적 구매력이 줄어드는 현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높아진 물가에도 불구하고 예상되는 주요국의 금리 인하, 끊임없는 재정확대 정책이 화폐 자체의 신뢰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불안감이 반영되고 있다는 얘기다.

역사적으로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금 태환 중단이 비슷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통화 발행의 주체가 스스로 통화가치를 훼손했고 실물자산 대비 화폐가치가 급락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시장의 불안 역시 이 맥락 위에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와 정부 부채의 증가는 상시화됐고, 미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경기둔화 조짐이 보일 때마다 통화완화를 선택하고 있다. 물가가 안정되어 있을 때는 그래도 불안이 작았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재정 투입과 유동성 공급 하에서 주식과 금은 동반해서 상승했지만 2011년 이후에는 금값이 안정되며 디베이스먼트 우려까지 진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보다 한층 높아진 물가 수준, 그리고 관세전쟁과 공급망 재편과 같은 물가상승 압력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똑같은 행위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물론 지금을 본격적인 디베이스먼트 시기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실질금리가 아직 양(+)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실질금리는 약 +0.4%, 미국은 +1.5% 수준이다. 화폐가 여전히 가치 저장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큰 폭 금리인하나 재정확장 선택하면 자산 가격과 경제에 충격 줄 수도

그러나 일부 시장참가자들은 이 균형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품는다. 이 상황에서 장기안정을 위한 시나리오는 느린 속도의 디베이스먼트다. 명목금리가 안정된 가운데 실질금리가 완만히 낮아지지만 물가상승 속도도 같이 줄어들면서 시장의 불안감이 줄어드는 형태다. 이 경우 화폐 불안으로 올랐던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은 일시적 조정에도 불구하고 안정적 흐름을 나타낼 것이며, 금값의 급등 현상도 잦아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경기부양을 위해 빠르고 큰 폭의 금리인하나 재정 확장을 선택한다면 단기적으로 주식과 부동산 금값은 더 오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통화시스템의 신뢰가 흔들리고 물가 불안과 명목금리 상승이 금 이외의 자산가격과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정책당국과 투자자 모두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최석원 전 SK증권 미래사업부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