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다카이치노선과 정치경제 변곡점

2025-10-28 13:00:00 게재

1961년생 나라현 출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1993년 32세에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일본에 흔한 정치가문 출신이 아니어서 정치 엘리트코스를 밟지 못했다. 1980년대에 고베대학교 경영학부를 졸업하고, 정치 저널리스트를 하다가 정치가의 길을 걷기 위해 ‘정책중심 정치’를 표방한 마쓰시타정경숙에서 훈련을 받았다. 같은 정경숙 출신 정치가로 현 입헌민주당 대표인 노다 요시히코가 있다. 노다가 중도·실용의 민주당 노선으로 간 반면 다카이치는 보수·국가전략형의 자민당 우파 노선으로 변화해 갔다.

다카이치는 정치인 초기(1993~2003)에 무파벌로 활동하면서 2000년대 초 IT기본법과 전자정부 구상에 참여한 바 있다. 이때의 경험이 ‘기술주권’을 중시하면서 훗날 경제안전보장정책을 주도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후 4선째에 낙선해 정치공백기가 있었지만 2005년 9월 중의원 당선 이후 아베 파벌에 합류하면서 현재까지 우파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다. 2006년에 제1차 아베 내각의 내각부 특명담당상(오키나와·북방대책, 과학기술정책 등)으로 활동했고,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사상 최장인 1438일간 총무대신을 역임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아베 파벌에 합류하면서 현재까지 우파 정치인 길 걸어

다카이치는 자민당 정무조사회장(2020-22년) 시절에 경제안전보장 정책에 대한 기본 철학과 정책 방향을 정립했다. ①핵심기술 보호 ②공급망 안정화 ③ 인프라 보안 ④기밀특허 제도화가 그 4대 축이다. 2021년 10월의 중의원 선거 당시 자민당 선거공약의 ‘경제안전보장추진법 수립’을 집필한 이도 다카이치였다. 이에 근거해 2022년 5월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이 제정·공포되었고, 이어 8월에 다카이치가 제2대 경제안전보장담당상으로 취임했다.

2024년 10월 선거에서 자민당 이시바정권이 대패해 자민-공명 연립정권으로도 과반수를 넘지 못하게 되자, 자민당내 우파를 중심으로 보수회귀, 선명 리더십 추구 움직임이 강해져 이시바를 끌어내리고 다카이치를 내세웠다.

공명당이 자민당과의 연립을 거부한 후 형성된 다카이치·일본유신 연립정권은 자민당 우파의 안보지향과, 일본유신회의 시장자유주의가 결합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10월 21일 자민당이 밝힌 일본유신회와 합의한 12개 정책 항목에는 경제·재정정책(감세 추진), 사회보장개혁(의료·요양비 구조조정), 왕실·헌법문제(남계 계승 유지와 헌법9조 개정 논의), 외교·안보정책(방위력 강화), 정보·인텔리전스 강화(국가정보국 창설, 외국자본 규제 강화), 에너지정책(원전 재가동, 재생에너지 병행), 경제안전보장(공급망강화, 전략산업 보호), 인구·외국인정책(외국인제도 정비), 통치구조 개혁(다극경제권 형성), 정치개혁(의원 1할 감축, 기업·단체 기부금 규제)등이 들어 있다.

이 내용들은 ‘작은 정부+국가전략형 경제’를 추구하는 것인데, 복지축소와 민간·자립 강조, 규제완화, 경제안보와 국가전략 분야 집중투자를 제시하고 있다.

국민 생활 지켜내면서 경제안보도 지키고 새 경제발전 동력 찾는 길

10월 24일 국회의 소신표명 연설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성장을 위한 대담한 투자로 반도체, 혁신형 원자로, 차세대 통신·우주·사이버 등 성장과 안보가 결합된 분야에 정부 주도 투자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국가의 강화’와 ‘생활의 안정’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있다. 세제혜택과 전략 산업투자 확대가 중소기업과 가계에 미치는 파급력은 제한적이다. 사회보장 면에서 ‘보편적-현금 지급’이 ‘선별적·조건부 지원’으로 바뀌고 의료·요양·교육비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국가전략이 강화되는 시대일수록 시험받는 건 국가의 힘이 아니라 국민 생활의 저변이다. 국민의 생활을 지켜내면서 경제안보도 지키고 새 경제발전 동력을 찾아내는 세 박자 균형을 추구하는 노선은 불가능할까. 한국도 곱씹어야 할 시사점이다.

이찬우 일본경제연구센터 특임연구원, 전 테이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