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퇴직연금 개혁 이대로 둘 것인가
‘수익률은 쥐꼬리, 수수료는 눈덩이….’ 언론 등에서 퇴직연금 수익률을 언급할 때마다 하는 얘기다. 일리있는 비판이다. 최근 5년간(2020~2024년)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은 2.86%에 불과한 반면 국민연금 수익률은 8.13%에 이르기 때문이다. 반면 퇴직연금사업자인 금융기관이 가입자에 대한 서비스 대가로 가져가는 수수료 수입은 매년 1조원이 넘는다.
저조한 수익률은 퇴직연금 도입 초창기부터 계속 지적돼 온 문제다. 여기에 퇴직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고,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아가는 비율이 높다는 문제도 있다.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만 퇴직연금 제도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조한 수익률' 초창기부터 계속 지적돼 온 문제
사각지대의 존재는 퇴직연금 제도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10.4%에 불과한 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91.7%에 달한다. 규모가 작은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퇴직연금 혜택을 누리지 못해 회사의 갑작스러운 부도로 퇴직금을 떼일 수 있다.
또 일시금 수령 비율이 높다는 것은 퇴직연금이 연금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만 55세 이상이 돼 퇴직연금을 받기 시작한 가입자중 87%가 일시금을 선택했다. 이들의 평균 수령액은 1654만원에 불과하다. 이 정도 금액을 연금 형태로 받으라고 한다면 소도 웃고 말 것이다.
이 문제는 수익률을 높여 적립금을 많이 쌓고, 퇴직연금을 중간에 정산하지 못하도록 하면 해결될 수 있는 비교적 쉬운 과제다. 결국 수익률 향상과 의무화가 퇴직연금 개혁의 핵심인 셈이다.
이재명정부 들어 퇴직연금 개혁 논의가 활발하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수익률 향상을 위해 기금형을 도입하고 모든 사업장에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고용노동부는 여기에 의무화 이후엔 일시금이 아닌 연금으로만 받을 수 있게 하는 방안까지 추진한다.
기금형은 가입자들의 적립금을 한데 모아 기금을 만들어 운용하는 방식이다. 전문가가 기금 운용에 참여할 수 있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반면 가입자 개인이 알아서 운용하는 현재의 계약형은 대부분(지난해 기준 82.6%)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넣어둔 채 방치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은 고용노동부가 28일 노사정 TF를 출범시켜 퇴직연금개혁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노사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이번 TF는 연내 합의문 또는 권고문을 낸다는 목표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퇴직연금 도입 이후 처음으로 노사가 함께 머리를 맞댄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이다.
퇴직연금 의무화, 노사정 대타협 필요
그렇다고는 해도 쉽지 않은 과제여서 비관적인 편이다. 퇴직연금 의무화만 해도 그렇다. 퇴직연금 보험료 부담을 이유로 반대하는 중소기업 설득이 관건이다. 정부 지원과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 자제를 이끌어내야만 기업측의 반대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노사정 대타협이 필요한 이유다.
기금형 도입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기업측 반대가 만만찮다. 퇴직연금사업자인 금융회사 내부에서도 기금형 도입 반대 기류가 강한 편이다.
반면 기금형 도입으로 혜택을 입는 가입자들의 찬성 목소리는 조직화되지 않아 정치적 압력이 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를 조정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일에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필요할 수도 있다. 도입 20년을 맞은 퇴직연금이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발전을 할 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에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