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암호화폐의 명과 암

2025-11-05 13:00:12 게재

미국에서는 지난 7월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인 지니어스액트(GENIUS Act)가 통과되며 암호화폐의 제도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일견 새로운 금융혁신의 시대가 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먼저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보자. 암호화폐는 진정 자산인가? 경제학에서 자산이란 미래에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채권은 이자를 낳고, 주식은 배당과 성장을 통해 수익을 가져온다. 그런데 비트코인을 보유한다고 해서 어떤 현금흐름이 생기는가? 어떤 법적 권리를 얻는가? 답은 ‘글쎄’이다.

암호화폐 제도화가 새로운 금융혁신일지는 미지수

화폐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가치의 안정성이 필수다.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거래에 쓰기보다 시세차익을 노리고 축적할 뿐이다. 암호화폐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누가 돈을 만들고 통제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싸움의 연장선이다. 역사적으로 국가는 중앙은행을 통해 화폐발행권을 쥐고, 상업은행은 그 감독 아래 신용을 창출해 왔다.

암호화폐는 이 공적질서 바깥에서 민간주체가 발행하고 운용하는 사적 화폐를 지향한다. 표면적으로는 ‘중앙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고귀한 구호가 내걸려 있다. 하지만 실제 수혜자는 초기에 헐값에 비트코인을 대량 확보한 얼리어답터들과 거래마다 수수료를 챙기는 거래소들이다. 비트코인 이외의 수많은 암호화폐는 사실상 민간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토큰에 불과하며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사람은 그것을 발행한 자들이다.

암호화폐는 민주주의와 시장에 대한 신뢰가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시기를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투명하고 공정한 화폐’라는 약속은 매력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비트코인 얼리어답터들은 명목화폐 체제가 곧 초인플레이션에 빠져 붕괴할 것이라 믿는 종말론자들이었다. 애초에 비트코인은 서구 정치질서의 붕괴에 대한 베팅이었던 셈이다.

블록체인이 실제로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혹자는 블록체인 기술만큼은 획기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기존 은행 시스템이 해결할 수 없었던 어떤 문제가 블록체인으로만 가능해졌는가? 아이폰과 같은 시기에 등장해 이제 거의 20년이 된 암호화폐의 기반 기술은 범죄나 도박 외의 영역에서는 거의 쓸모를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제도화 움직임의 중심에 있는 스테이블코인도 근본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를 담보로 만든 토큰, 즉 겉모습만 바꾼 머니마켓펀드에 불과하다. 만약 대기업들이 각자 다른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면 화폐의 기본 전제인 교환 가능성과 신뢰성은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유동성 측면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통화가 상업은행의 대출을 통해 유동성이 확대되듯, 제도화된 암호화폐는 통제되지 못한 유동성 확대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는 자산거품과 금융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암호화폐는 젊은 소액 투자자들의 자금이 초기 보유자와 거래소 운영자들에게로 이전되는 구조를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암호화폐가 무너뜨리겠다던 그 월스트리트가 지금은 거래소에 투자하며 함께 수익을 나누고 있다.

사적 화폐의 제도화가 가져올 사회적 영향 논의할 때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암호화폐의 제도화가 가져올 사회적 영향에 대한 논의다. 불평등의 심화, 통제되지 않은 유동성의 확대, 금융 안정성의 저해, 통화주권 약화 이슈부터 암호화폐 도입 논의는 그 실익이 무엇인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의 불평등과 통제되지 못한 유동성 확대 등의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가격 그래프가 아니라 사회적 비용과 편익으로, 신기루가 아니라 실물경제의 좌표로 평가해야 할 때다.

유경원 상명대 교수, 경제금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