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회생기업 신용사면제도 절실하다
중동과 유럽지역에 중장비 무역을 하는 A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키코사태’ 등으로 막대한 금융손실을 입고 2012년 법원 회생절차를 밟았다. 모든 노력을 기울여 회생절차를 마치고 재기하려고 꾸준히 기존 바이어 접촉과 신뢰구축 결과 재기를 위한 계약을 성사시켰다.
희망에 부풀어 있던 그에게 현실은 또 다른 시련을 안겼다. 금융기관과 보증기관은 과거의 회생이력을 근거로 대출과 보증을 거부한 것이다. A씨는 기업회생 절차만 끝나면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영혼을 끌어모아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건만 정부와 금융당국의 답변은 “안된다”였다.
회생절차보다 법인파산이 낫다는 현실
요즘 만나는 중소기업 대표들은 기업이 어려워지면 회생절차보다 법인파산 후 면책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회생인가를 받아도 A씨처럼 낙인효과로 제대로 기업활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2023년 대법원 사법연감에 의하면 기업회생을 통해 재기하려고 기업회생을 신청한 중소기업은 1602개사다. 문제는 이들도 혹독한 기업회생 뒤에 다시한번 절망이 찾아올 거라는 현실을 아직은 모르고 있는 듯하다.
금융위원회는 9월 29일 발표한 개인 신용사면제도가 경기침체나 일시적인 위기 등으로 인해 소액의 채무를 연체했던 개인 또는 개인사업자가 해당 연체채무를 모두 상환할 경우 금융기관이 공유하는 연체 이력정보(신용 낙인)를 삭제해 올해 안에 약 370만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했다. 개인은 40점 이상의 신용점수를 회복하고 개인사업자도 평균 31점 이상 신용점수가 올라 제1금융권 대출이 가능하다는 게 금융위 판단이다.
회생기업에게 ‘기업신용사면제도’가 필요한 이유는 첫번째로 금융접근성 회복을 통한 패자부활의 현실화에 있다. 사람이 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되면 중환자실, 일반병실에서 치료를 잘 받아 건강이 호전되면 퇴원한다. 기업도 기업회생이라는 재무적 수술을 받고 금융권 연체기록 삭제, 기업신용회복, 세금감면, 금융지원 등 치료를 잘 받아야 기업이 건강해진다.
현실은 녹녹지 않다. 금융권 연체기록과 회생이력으로 인해 기업의 신용은 D등급이 되고 낙인이 찍혀 거래처로부터 계약서를 받아도 금융권 대출이 막히고, 보증보험사의 이행보증보험도 막혀 거래를 완성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회생인가 기업에 포용금융정책을 확대 적용해 금융권 연체기록을 삭제하고 현재 재무상태를 재평가한 후 향상된 신용등급을 적용해 많은 회생기업의 신용이 회복되면 대출 투자 이행보증 무역보험 등의 혜택을 볼 수 있다. 회생기업은 자신감을 갖고 재도전을 통한 패자부활을 보여줄 수 있다.
두번째로 불법 사금융 유입 방지에 도움이 된다. 그동안 금융권 및 이행보증보험이 막혀 자금을 만들 수 없었던 다수의 A씨들은 매출 활동을 위해 불가피하게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게 된다. 기업신용사면제도가 시행이 되고 많은 인가기업이 혜택을 받는다면 중소기업들이 불법사금융에 몰리는 폐단을 예방할 수 있어 건전한 금융시스템 안에서 경제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신용사면, 회생기업의 패자부활 가능케 해
결과적으로 개인 신용사면제도가 일시적인 실수나 외부충격으로 금융활동에 제약을 받은 개인에게 ‘재기의 문’을 열어 주듯 기업 신용사면제도는 기업회생을 성실하게 수행해 인가결정을 받은 회생기업 및 잠재력 있는 중소기업이 다시 경제주체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경제시스템이다.
따라서 회생기업의 신용사면제도야말로 회생기업에게 재기의 문을 열어주고, 패자부활을 가능케 한다. 고용유지 세수확대는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해 지방소멸을 예방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