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금은 국제금융질서 변화의 거울
필자가 한국은행에 근무할 당시 지인들이 단골로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한국은행 본점앞 분수대 밑에 금괴가 있다는 데 사실인가”하는 것이다. 실망스럽게도 정답은 “아니다”이다.
현재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은 104.4톤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 및 거래의 편의성 때문에 전부 영란은행에 보관돼 있다. 여기에는 아픈 역사가 있다. 해방 후 한국은행은 ‘지금은(地金銀)’을 지하금고에 보관해왔는데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급속한 남하로 보유 지금은 중 미처 옮기지 못한 일부 지금은(금 260kg, 은 16톤)이 북한군에 넘어간 것이다(한국의 화폐 125쪽, 한국은행). 전쟁이 끝난 후 금을 대구지점에 보관해오다 1998년 금모으기 운동으로 확보한 금과 함께 2004년 이전에 영란은행에 전부 이관했다.
달러 대체할 안전자산, 미중 전략경쟁이 금값 밀어붙여
보유 금을 어디에 보관하느냐 하는 문제가 2012년 이후 독일에서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자국 금(금괴)을 당시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영국과 미국에 분산 보관해 오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당시 서독(현재 독일)도 같은 이유로 자국 금을 해외에 보관해왔다. 2012년 독일연방은행은 3391톤의 금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중 프랑크푸르트 본점에 31%, 뉴욕연방은행에 45%, 영란은행에 13%, 프랑스은행에 11% 비중으로 예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독일감사원은 독일연방은행이 해외에 예치된 금에 대해 현장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직격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이후 독일연방은행은 이를 확인하려 했으나 영란은행이 확인서만 발급할 뿐 확인 거부로 무산되자 독일의회에서는 해외에 예치된 자국 금을 본국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이러한 논란 속에 독일연방은행은 2020년까지 보유 금의 국내 보관비중을 50%까지 확대하는 계획을 발표했고 2017년 8월 50.6%로 조기 완료했다.
현재 금에 대한 이슈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금값이 아닐까 한다. 금년 10월 말 현재 금 1온스당 가격은 4022달러로 2020년 말 1846달러에 비해 무려 118% 상승했다.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가 같은 기간 각각 82% 및 78% 상승한 것에 비교하면 엄청난 상승률이다.
왜 이렇게 금값이 고공행진하는 것일까? 첫째는 금은 달러를 대체할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통상 금은 미연준의 금리인하 등으로 달러 약세가 예상될 때 투자자는 대체수단인 금을 늘리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한다. 미연준은 작년 9월부터 금년 10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정책금리를 1.5%p 인하했고 앞으로도 추가적인 인하가 기대되는 데다, 트럼프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달러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된 것도 금 수요를 늘려 금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
둘째는 미중 전략경쟁과 지정학적 위험이 점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진행됨에 따라 중국은 전략적으로 미국채 비중을 줄이는 대신 전통적인 준비자산인 금보유를 늘려왔다. 또한 러시아도 크림반도 병합,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등으로 서방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게 되자 금(외환보유액의 30%) 보유를 급격히 늘려오면서 금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금값에는 다양한 국제금융질서 변화 투영돼
세계금협회에 따르면 올 7월 말 기준 러시아와 중국의 금보유량은 각각 2336톤 및 2264톤으로 2013년 3월 말에 비해 각각 1366톤 및 1210톤 늘렸다. 인도 튀르키에 카자흐스탄 등도 같은 기간 총 676톤을 늘렸다. 중국 등 5개국이 늘린 금보유량은 3252톤인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4270억달러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과 비슷한 규모다. 그러니 금값이 오르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이다. 우리가 금가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금의 움직임 이면에는 다양한 국제금융질서의 변화가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