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국가투자, 이젠 수익전략 설계할 때
최근 정부는 인공지능(AI)과 K-콘텐츠 산업을 국가 성장의 양대 축으로 삼고 대규모 재정과 민간투자를 병행하고 있다. AI 반도체, 데이터 인프라, 콘텐츠 수출 지원 등 ‘활성화’ 정책이 빠르게 전개되는 가운데 한가지 질문이 남는다. 이렇게 막대한 투자가 과연 국가의 장기적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현재 정책의 초점은 ‘투자 확대’와 ‘생태계 조성’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산업정책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국가 자산을 축적하고 순환시키는 투자행위이다. 따라서 국가의 전략적 투자는 반드시 수익환류 구조와 재투자 메커니즘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수익환류 구조와 재투자 매커니즘 함께 설계
해외 주요국은 이미 공공투자를 수익창출형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캐나다의 ‘범국가 AI전략(Pan-Canadian AI Strategy)’은 단순 연구비 지원이 아닌 AI 기술지분 투자 모델을 채택했다. 정부 펀드가 주요 연구기관의 알고리즘·데이터기술에 일정 지분을 보유하고, 민간 이전 시 발생하는 수익을 차세대 AI 연구에 재투자한다. 이를 통해 캐나다는 세계 10대 AI 상용화 허브로 성장하며, 공공투자가 국가 기술자산으로 환류되는 구조를 확립했다.
싱가포르는 ‘테마섹홀딩스(Temasek Holdings)’와 ‘GIC’등 국부펀드를 통해 AI 바이오 콘텐츠 등 신성장산업에 장기 자금을 공급한다. 이 펀드들은 정부 재정과 민간 투자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펀드’로 운영되며, 수익의 일정 비율을 다시 국가 R&D와 교육기금으로 환류시킨다. 단기 사업이 아니라 국가 투자 포트폴리오 관리체계로 작동하는 점이 핵심이다.
핀란드 역시 ‘기술혁신지원청(Business Finland)’이라는 공공투자기관을 통해 스타트업과 AI 프로젝트에 초기 자금을 투입하되 성과가 상업화되면 정부가 일정 지분 또는 로열티 형태로 수익을 회수한다. 이 수익은 새로운 창업과 연구개발로 재투자돼 국가 전체 혁신시스템이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든다.
반면 우리나라의 AI와 콘텐츠산업 투자정책은 여전히 ‘지원’ 중심의 프로젝트형 구조에 머물러 있다. 과학기술 문화산업 중소벤처 정책이 각기 분절되어 운영되고, 투자 이후의 성과관리와 수익환류는 명확히 설계되지 않았다. 예산이 매년 새로 편성되고 사업 종료와 함께 축적된 성과는 산발적으로 흩어진다. 결국 수익 창출의 경로는 민간에 흡수되고, 공공투자는 ‘지원금’으로만 남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얼마를 더 투자할 것인가’가 아니라‘어떻게 장기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국가자산으로 축적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전략 전환이다.
첫째, 정부는 AI·콘텐츠 등 전략산업에 대한 국가 단위의 포트폴리오 관리 시스템(National Investment Portfolio)을 구축해야 한다.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대신, 투자-성과-수익 환류의 전 과정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국가혁신자산운용기구(NIAF, National Innovation Asset Fund)’와 같은 상설기구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공공투자로 생성된 IP·데이터·알고리즘·콘텐츠의 지분화·수익화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단순히 성과보고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지식자산의 일부를 보유하고 이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을 차기 연구와 창업 지원에 활용하는 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재정지출 관점을 ‘보조금’에서 ‘투자자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산업정책의 언어가 ‘지원사업 관리’에서 ‘투자운용 전략’으로 바뀔 때 비로소 공공투자는 지속가능한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AI와 콘텐츠산업은 단기적 ‘붐’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기술과 창의력이 결합된 이 영역은 장기적 자산축적이 핵심이며 그것이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 된다. 지금의 활발한 투자 흐름이 일회성 예산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가 투자자로서 수익을 회수하고 재투자하는 체계’, 즉 장기적 수익 전략이 필수적이다. 국가가 전략적 투자자로 변모할 때 산업정책은 일회성 지원을 넘어 지속가능한 혁신 자산 운용정책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