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왓슨,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 산 생명과학자
DNA 이중나선구조로 30대에 노벨상 수상 … 인종차별 발언으로 추락
사회생물학의 거장 에드워드 윌슨이 앞으로 1000년 후 생명과학의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랜드마크를 들라고 한다면 그것은 1859년에 발표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과 1953년에 발표된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DNA 이중나선구조’ 논문이라고 단호히 밝힌 바 있다. 그 역사의 주인공의 한 사람인 제임스 왓슨이 6일(현지시간)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생물학의 랜드마크를 발견한 업적
1953년 네이처 학술지에 발표된 한쪽 반 분량의 논문이 생명과학 역사의 장을 새로 열었다. 왓슨과 크릭 두 사람의 논문이었고, 손으로 그린 그림 하나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바로 DNA의 이중나선 모델이었다. 이 작은 논문 하나가 어떻게 생명과학 역사를 새로 쓰게 했을까? 우선 유전물질로서의 DNA가 한 가닥이나 세 가닥이 아니라(노벨상에 빛나는 라이너스 폴링은 세 가닥 구조를 제안한 바 있지만 틀렸다) 두 가닥으로 꼬여 특이적 수소결합으로 서로를 붙들고 있는 형태의 안정적인 화학적 구조를 가진다는 것을 밝힌 것이 하나의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이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 은유적으로 표현된 내용 때문이다. 저자들은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이 약간은 거만하게 “이중나선구조 속의 결합 양상을 보면 곧바로 유전물질의 복제 기전을 알 수 있음을 간파했다” 라고 썼다. 이 표현이 중요한 이유는 DNA가 ‘유전’ 물질로서 작동하기 위해 오류없이 복제되어 다음 세대로 넘겨질 수 있는 성질을 충족한다는 뜻이기 떄문이다.
필자들을 대신해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DNA를 구성하는 네 가지 염기인 G,A,T,C는 각각 특정 염기와만 수소결합을 할 수 있어서 G는 C와, A는 T와만 수소결합을 할 수 있다. (이들을 ‘상보적 염기’라고 표현한다). DNA의 이중나선을 들여다보면 한쪽 가닥에 있는 염기들과 상보적인 염기가 상대편 가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한 가닥의 염기서열 순서를 알면 상대편 가닥의 염기서열은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이를 응용해 보면 필자들이 말한 복제의 기전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중나선으로 꼬여 있는 DNA 두 가닥을 풀어내면 (즉 기존의 수소결합을 끊어 주면) 각각 가닥의 염기들이 순서대로 노출되게 되고 이에 DNA를 합성할 수 있는 효소만 있다면 자동적으로 염기들의 순서가 결정되어 채워 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이중나선이 두 개의 이중나선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즉 복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예측은 이후 시간을 두고 각 과정에 참여하는 효소들이 발견되면서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예측은 DNA 복제에서 한 가닥은 원래의 모양으로 있고 상대편 가닥만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반보존적 복제 기전’이라고 부른다. 이 또한 이후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현재의 언어로 표현해도 복잡할 수 있는 내용을 왓슨과 크릭은 “간파했다”고만 썼으니 오만하다고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노벨상 수상 50년을 직접 기념하다
2012년 필자는 노벨상을 수여하는 기관인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과대학에서 1년간 연구년을 지냈다. 매년 12월 초에는 노벨상의 주간이 펼쳐지는데 시상식은 12월 10일에 열리지만 그 전에 당해연도 수상자가 순서대로 대중강연을 진행하는 것이다.
특히 그해에는 노벨 다이알로그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인구가 적은 스웨덴에서는 그냥 선착순으로 신청하거나 줄을 서면 대부분의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해에 노벨 다이알로그를 시작한 것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여서 시대의 난제를 제시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의 장을 열어주기 위해서었다.
첫 행사이기에 주요 수상자들이 많이 초청되어 왔는데 가장 주목을 받은 인사가 제임스 왓슨이었다. 이 분이 노벨상을 수상한 해가 1962년이니 꼭 50년이 되는 해였다. 노벨상 수상 후 50년이 되는 해를 직접 기념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 때만 해도 왓슨은 조금은 논쟁적 이슈를 몰고 다니는 천재 과학자로 이해되었다. 필자 또한 생존해 있는 수상자의 수상 50주년 기념의 현장에 있음을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다만 이분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시대를 이끌 만한 통찰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거 아닌가 싶다.
노벨상 메달 경매에 낼 만큼 궁핍한 말년
제임스 왓슨은 생애 내내 논란을 달고 살았다. 가장 유명한 저서인 ‘이중나선’에서 여성 폄하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동료 학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혹평을 써 두는 등 논쟁적 내용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포함했다. 그것이 그 책이 유명해진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그런 행동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제임스 왓슨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것은 그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의식으로 보인다.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아프리카 개발 전략을 백인들의 생각과 방식대로 설정하면 필히 실패할 것”이라며 “그 이유는 인종에 따라 지성의 정도가 달라서 그렇다”라는 주장을 한 것이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살아있는 전설 왓슨 박사의 세미나 초청을 했던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들이 취소하기에 이른다. 말년에는 그가 가지고 있던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 놓을 정도로 궁핍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씁쓸했다. 아직까지도 왓슨 본인이 이 발언에 대한 사과를 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없으니 그 기회를 놓친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어쩌면 노벨상 메달 경매는 세상에 대한 항의였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드니 이 역시 안타깝다. 아무리 세상을 바꾸는 엄청난 발견을 한 뛰어난 학자라 하더라도 사람에 대한 존경과 존중, 그리고 배려가 없다면 스스로가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함을 보여준 반면교사라 하겠다.
인간게놈프로젝트 밀어붙이기
제임스 왓슨과 관련한 에프소드 하나 추가해 본다. 필자가 미국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을 때 좋아 했던 것 중 하나는 학과에 유명한 학자들이 세미나를 온다는 것이었다. 그 중 한 연사가 바로 제임스 왓슨이었다. 강의실은 제법 컸는데 당연히 만석이었다. 이 분의 당시 발표내용은 인간게놈프로젝트에 대한 것이었다. 그 무렵 이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많은 학자들이 불필요한 거대 프로젝트로 더 중요한 연구들을 고갈시키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세미나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왓슨은 폭탄발언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학계에는 두 부류의 과학자들이 있는데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찬성하는 좋은 과학자와 이를 반대하는 나쁜 과학자가 그것이다”라는. 대학원생이던 필자는 당황했지만 참 도발적인 농담을 하시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수많은 생물학과 교수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세미나장을 떠나버렸다. 그런 와중에 왓슨은 강연을 끝까지 진행했던 거 같은데 그 내용이 더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 상황이었다.
제임스 왓슨은 그렇게 인간게놈프로젝트를 밀어붙였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평가를 해 보면 가장 투자 대비 성과가 좋았던 대형 프로젝트로 꼽힐 정도로 대단한 성과를 냈다.
그럼 왜곡된 가치관으로 밀어 붙인 왓슨이 옳았고 그에 반기를 든 수많은 모래알 같은 학자들은 틀렸던 것일까? 필자는 단호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학자들이 반대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더 독단적으로 프로젝트를 끌고 갔을 것이고 실제로 학문 생태계를 무너뜨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더 필요했고 그래서 더 혁신하고 진지하고 심각하게 그리고 최대한 경제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조심하면서 차근차근 추진하게 되어 인간게놈프로젝트도 소기의 성과 이상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은 비전을 가지고 과감하게 추진하는 측과,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제안 등이 모여 허심탄회하게 의사소통하고 집단지성으로 윈-윈하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날로그 과학시대를 풍미하다 떠나다
거의 100년 전에 태어나 20대에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해 분자생물학의 새로운 장을 연 과학자. 30대에 노벨상을 받고 그 이후 생애 내내 DNA를 포함한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헌신하고 유전체 연구를 주도한 과학 행정가. 생명과학의 흥미로운 이면과 과학의 발전을 현장감 있게 표현한 베스트셀러 작가. 인종차별적 발언 등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셀럽….
이 모든 것을 가진 이가 바로 단 한사람 제임스 왓슨이다. 지난 100년 간의 아날로그식 과학이 저물면서 이제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의 시대로 접어드는 가히 혁명적 시기에 세상을 떠나니 그의 생애만큼이나 그의 죽음도 드라마틱하다. 새로운 과학의 시대, 좀 더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천재 제2의 제임스 왓슨을 기다려 본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